펌글, 펌 환영

0. 최근 일부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관련된 논란이 유행하더라고요.

드라마 재밌게 보고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서 논란된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걸 누가 믿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괴한 선동글이더라고요.

논란이라는 게 요약하면 '우영우는 박원순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이겁니다.

아니 한편으로는 작가가 페미라고도 까시던데… 박원순을 그리워하는 페미라니 이게 양립 가능한 개념이긴 한지, 앙증맞은 발상에 감탄이 나옵니다만 뭐 일단 넘어갑시다.

사실 논란 제기한 원문이 '논란 제기'라는 표현이 부끄러울 정도로 전형적인 디시 똥글이라 어이없는 끼워맞추기에 트집투성이인데 뭘 시간 들여서 반박씩이나 하나 싶긴 합니다.

그렇지만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에, 그것도 박은빈 나오는 드라마에다 대고 어기대는 꼴이 보기 싫어서 글 써봅니다.

억지 주장을 하나하나 다 반박하기도 지치니 대표적인 것들은 짚어 보겠습니다.

논란 때문에 내심 찝찝하셨거나 진지하게 믿으신 분들 모두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우영우의 작가 문지원이 졸업한 대안학교 '하자작업장학교'는 '박원순 학교'일까요?

'하자센터'는 서울시의 위탁으로 연세대학교가 운영하는 시설로, 1999년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의 주도로 설립되었습니다. 

하자센터에서 만든 대안학교인 '하자작업장학교'는 2001년 개교했습니다.

문지원 작가는 2003년에 하자작업장학교의 첫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재단법인 '희망제작소'는 2006년 박원순을 중심으로 설립됐습니다.

2000년 박원순을 중심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아름다운재단'은 2010년대 초 하자센터와 몇 차례 공익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뭐 어쩌라는 걸까요? 기초적인 시기조차 안 맞습니다.

하자센터가 2003년경에 박원순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활동한 케이스 하나 제대로 찾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요?

그냥 대충 인터넷 기사 내용 좀 긁어다가 글 깨작깨작 써서 디시에 올리면 그만인 것을, 그렇게까지 공들이기 귀찮았던 걸까요?

선동 주제에 게으르기까지 합니다. 아니, 설령 시기를 잘 맞춰 논란을 제기했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이었을까요?

필자는 지난 한 달간 집 앞 GS25에 여러 차례 방문하여 다양한 상품들을 구매한 바 있습니다. GS25는 제 영향하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까요?

혹시나 해서 말해두자면, 1999년 당시 서울시장은 박원순이 아니라 고건 前 총리입니다…

2. 시 낭송은 박원순의 상징일까요?

우선 이 부분은 혼동이 너무 심해서 드라마 내용을 구체적으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12화 마지막 부분에서 류재숙 변호사가 낭송한 시는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입니다.

김수영 시인의 이름은 해당 에피소드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지영 대리가 이름만 언급합니다.

박원순이 공식 석상에서 낭송한 적이 있다는 시는 김수영 시인의 시입니다.

사실 '박원순이 낭송한 적 있는 것이 공교롭다'고 말하기에 김수영 시인은 너무 유명한 시인입니다.

진보인사·사회운동가라면 저항 정신이 가득한 그의 시를 이따금 언급하고 인용하고 하죠. 박원순도 마찬가지였고요.

누가 사미인곡〉의 정철 다음가는 수능 단골 시인인 김수영을 박원순이 낭송한 시의 창작자로 기억할까요? 이 세상은 박원순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연탄재 시인' 안도현 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유명해서 언급된 게 희안할 것도 없어요.

연탄 한 장〉은 좀 덜 유명하다 해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로 시작하는 시 너에게 묻는다〉 모르시는 분 계십니까?

논란을 믿는 사람들은 시 낭송이 마치 박원순의 전매특허나 아이덴티티라도 되는 양 말하더군요. 그거 정치인이면 어쩌다 다 하는 겁니다.

문재인도 한 적 있고, 이재명도 한 적 있고, 이명박도 한 적 있고, 안철수도 한 적 있고, 박원순도 당연히 한 적 있습니다.

그보다 왜 류재숙 변호사가 자세 잡고 비장하게 낭송한 안도현 시인이 아니라 지나가듯 언급된 김수영 시인을 걸고 넘어졌을까요?

친민주당 인사인 안도현 시인의 시를 민주당 정치인이었던 박원순이 낭송한 기사 하나 찾는 게 그리 어려웠던 걸까요?

인터넷을 뒤적거려도 그럴듯한 각이 안 잡혀서 그냥 김수영 시인 시 낭송으로 적당히 대체한 걸까요? 정말 게으릅니다.

저도 박원순이 안도현 시인 시 낭송하는 건 못 찾았네요. 문재인이 전주에서 낭송했다는 기사는 찾았습니다.

충격입니다. 류재숙 변호사의 모티브는 문재인이었던 걸까요?

같은 남평 문씨로서 집안 유력자에게 아첨하려던 문지원 작가의 음흉한 속셈을 제가 간파하고야 만 것일까요?

본관 얘기가 수상할 정도로 많이 등장하는 작품의 본관 얘기가 수상할 정도로 많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낭송된 안도현 시인의 시…

이게 과연 문재인 대통령과 문지원 작가 두 사람의 본관과 완전 무관할까요?

3. 옥상텃밭과 비빔밥도 박원순의 상징일까요?

옥상텃밭과 비빔밥도 시 낭송과 마찬가지입니다.

박원순이 시장 시절 도시농업이다 뭐다 해서 옥상텃밭도 꺼내들고 온 건 맞아요. 그렇다고 그걸 박 시장 전매특허나 상징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도시농업 그거 서울, 대전, 대구, 전주, 부산 등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지자체에서 으레 합니다. 주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 진행하고, 구청이나 주민센터 옥상에다가 채소 기르고.

그리고 채소 길러서 비빔밥 만드는 게 그렇게 특이한 일이었나요? 누가 옥상텃밭에서 비빔밥 만들어 먹었다고 "아! 박원순!" 합니까? 아무도 안 그래요.

이상하게 연결하려고 노력하니까 연결되어 보일 뿐입니다. 박원순 옥상 텃밭 비빔밥 치면 관련 기사 딱 2개 나옵니다.

4. '농협 사내부부 해고 사건'은 '박원순 사건'일까요?

(김진 변호사가 한겨레21에 2013년 기고했던 글)

우영우 12화는 1999년 '농협 사내부부 해고 사건'을 모티프로 했습니다.

해당 사건의 원고 측 공동변호인단에 당시 민변 소속 변호사였던 박원순이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근데 이 사건의 공동변호인단은 총 16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박주현, 최은순, 김진, 고영구, 김형태, 박성호, 박원순, 이백수, 정미화, 최병모, 최영도, 이유정, 이지선, 원민경, 이상희, 김태선)

주변호사로서 여성 직원 2명과 긴밀히 소통하며 변호를 주도한 것은 박주현, 최은순, 김진 변호사였습니다.

이들 중 가장 류재숙 변호사의 실제 모델일 확률이 높은 사람은 김진 변호사입니다.

작품 속에서 다소 뜬금없이 등장한 붕어빵도 한겨레21에 김 변호사가 직접 기고한 글을 보면 언급되어 있어요.

박원순 이름으로는 그 흔한 인터뷰 기사 하나 안 난 사건인데, 이걸 '박원순 사건'으로 설명하는 게 맞는 일일까요?

류재숙과 같은 여성 변호사인 김진 변호사를 제쳐 두고 류재숙을 박원순에 비추어 볼 이유가 딱히 있을까요?

해당 사건에서 박원순이 아무것도 안 했을 거라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이 사건을 '박원순 사건'으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딱히 그럴 이유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5. 그래도 너무 공교롭지 않나?

공교롭다고 생각하니까 공교로운 거죠.

위 네 가지 말고도 플로깅, 돌고래 해방, 탈북민 지원 다 마찬가지예요.

박원순은 성희롱을 저지르고 불명예스럽게 세상을 등지기 전 한때 '시민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인물입니다.

정계 입문 전에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로서 이 나라의 여러 분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죠.

또 정계 입문 후에는 10년 가까이 서울시장을 지내며 대형 정치인으로 있었으니, 웬만한 일들에는 좋으나 싫으나 당연히 연결이 되어 있어요.

특히 말년에는 대권 욕심도 어마어마하게 부렸으니 이 문제 저 문제에 얹은 말들도 많고, 당연히 기사도 많고 사진도 많고 한 거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박원순으로써 설명될까요? 우리 사회의 모든 사회적 의제들은 박원순에 종속되는 걸까요?

재차 말씀드리지만, 세상은 박원순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6. 고래 퀴즈

우영우에 대한 이번 논란과 반응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고래 퀴즈 생각이 납니다.

애당초 말이 안 되는 단서에 집착하다 보면 핵심을 놓치고 본질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처럼,

악의적인 권모술수에서 비롯한 낭설에 휘둘리다 보면 정작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는 잊게 되죠.

소외된 사람들과 가치들, 우리 사회의 고민들… 이야기할 것은 언제나 많습니다. 핵심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