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절반은 노비였다10

조선중기까지만

하지만 그 노비에게도 쿨하게 족보 팔던 나라

로마 제국, 중화제국, 짜끄리 왕조의 시암 왕국, 일본, 러시아, 서유럽, 티베트 등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아 부린 사례는 역사를 통틀어 조선 이외에도 수도 없이 많으며, 범위를 근대까지 줄인다고 하더라도 짜끄리 왕조의 타이와 제정러시아, 티베트가 조선과 같이 해당 조건에 부합 된다고 잠깐만 검색해 봐도 유일한 민족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닌걸 알수 있죠.

미국도 남북전쟁이후에 노예제가 꽤나 지속됐는데

그 비율이 50프로에 육박한다는 것은 기록상으로 보나, 정황증거로 보나 전혀 아니었습니다.

국가 시스템상 가능하지도 않고요.

실제 노비가 가장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16세기로 따져도 최대로 추산해야 30프로가 안 됩니다.

제가 국가 시스템상 불가능했다고 한 부분은, 만약 노비가 절반에 육박했다면, 조선은 군인도 없고, 세금 낼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조선의 노비는 군대도 안 가고, 세금도 면제였거든요. 스님도 마찬가지.

노비가 절반에 육박해 세금도 제대로 못 걷는 나라가 임진왜란 때 그 강한 수군을 보유하고 있었을 리도 없고, 화포 같은 비싼 무기도 없고, 판옥선과 거북선 같은 배도 없었겠죠. 무엇보다 싸울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조선시대 통틀어 노비 명단에 이름을 가장 많이 올린 때는 두 차례의 대기근 때였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노비되자는 사람도 많았지만, 역시 먹고 살기 어렵고 세금 내기 어려워 노비에 이름을 올려놓은 거죠. 군역 같은 경우도 훈련 뿐만 아니라, 성을 쌓는 데에도 동원되거나 병역 대신 세금을 내야하는 등 고충이 많았죠. 그래서 노비에 이름을 올리려는 백성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조정이 바보입니까? 가뜩이나 임진왜란 이후 남부지방 경작지가 피해를 입어 세수 부족인 판에, 세금 안 내려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게.

그래서 조정에서는 지속적으로 노비 줄이려는 노력들을 시작하죠. 물론 임진왜란 때부터 싸움 잘하는 천민들을 면천시켜주곤 했습니다.

또 하나의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바로 천하동례론이라는 성리학 사상(?)입니다. 상복 가지고 붕당끼리 다툰 일화를 아실 겁니다. 임금도 똑같은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 아닌가.

임금은 특별하다던 남인들은 임금의 왕권을 늘리고, 양반의 기득권을 제어하고, 백성들을 위한 위민 정치를 펼치고자 하였죠.

그런데 반면 서인, 노론 세력들도 모든 사람은 같은 예법으로 적용하고, 교육받아야 한다는 신념 아래, 나름의 가치관을 이어갔던 겁니다.

이 일환으로 이들이 추진했던 것이 노비 혁파와 서얼 차별 철폐 등이 있습니다. 아무나 사문난적으로 낙인찍던 개꼰대 우암 송시열도 자기 딸과 며느리 등에게 직접 쓴 예법 책이나 교육책 등을 나눠줄 정도였죠.

딸에게 예법을 강요하니, 일견 차별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으나, 되레 여성도 공부해서 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 시대 치고 깨인 면모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름 주체적인 여성상이었죠.

병자호란 이후로 하도 추노가 일어나서 가뜩이나 노비 숫자는 줄어들고 있었습니다만. 노비 혁파 만큼은 조선의 양반들이 진심이어서, 처음에는 3대가 병역에 복무하면 면천한다로 시작, 나중에는 일정 돈만 내면 면천시켜주는 등, 조건이 완화되죠.

단, 이들이 면천된다고 하여 문과에 응시해 고위 관료가 될 수 있던 것은 아닙니다. 무과, 잡과는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응시는 면천된 본인은 불가능하고, 아들부터 가능했습니다.

돈을 번 노비들은 꽤 늘어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홍경래의 난에 연루된 사람 중에 천민 출신의 부유한 상인이 있었죠. 청나라와의 무역으로 돈을 꽤 벌었습니다. 물론 농사를 지어 성공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노비들은 강상죄라고 하여 주인을 관아에 신고하진 못했습니다만, 민사 재판은 가능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상속을 두고 주인과 소송한 노비들도 꽤 여럿 있습니다. 주인과 아주 멀리 떨어진 데에서 사는 노비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게 서구 노예제와 조선시대 노비제가 많이 다른 까닭입니다.

노비 인권은 다양하게 살펴봐야 할 면이 있어,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드라마에서처럼 과장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권문세족들이 날뛴 고려 말 같은 상황이 아니고서는요.

적어도 조선 시대 양반들은 체면 때문이든, 힘센 노비들이 집단 반란을 일으킬 것 같아서이든, 제대로 일 안 할 것 같아서이든, 조선의 법률 때문이든, 추노할 것 같아서이든 막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개차반이 있다면 보통 임해군과 같은 왕의 망나니 아들이었죠. 물론 고관대작의 아들이라고 그런 넘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요.

공노비 혁파는 순조 때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 세력들이 실시하고, 철종 때도 관련 조처들이 있어서, 조선 후기 천민의 비율은 현저하게 낮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조사한 기록들을 보면 몇 사람 없는 마을이 많았죠.

그리고 1894년 갑오개혁 때, 노비제는 완전히 폐지되며, 양반과 천민의 구분도 공식적으로는 없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