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7 - 조선의 문을 두드리는 세계 열강>

이제부터 조선은 대외적으로도 진정한 '혼돈'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청나라는 러시아를 두려워했는데,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미국을 조선에 주선해주기도 했다.

일본 역시 류큐와 대만을 침공하는 등 청나라는 이곳저곳에서 얻어터지며, 서양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러시아는 일본과 사할린 및 지시마 열도에 관한 경계를 확정한 후, 조선으로 발을 뻗었으나, 영국이 계속해서 견제하여, 만주와 동해안쪽에서 상황을 엿보고 있었다.

1863년 말에 철종이 죽고, 어린 고종이 즉위했으나, 이는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으로 불리는 이하응의 술수였다.

고종 즉위 초반에, 형식적으로는 왕후의 수렴청정이 있었음에도, 실제는 흥선대원군이 집정을 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집권 10여년 동안에는, 직전까지 나라를 뒤집던 노론 중심의 '문벌세력'들이 힘을 잃게 되었다.

그는 여러 개혁을 단행하며 민심을 사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민심을 이반시키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이후, 계속해서 미뤄두었던 '경복궁 중건'은, 왕권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추진되었다. 그 외에도 군사력 증강, 정치자금 등을 위해서도 돈이 꽤 많이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성으로 여러가지 세금을 거두어 들였고, 또한 '상평통보' 보다 100배의 가치를 가진 '당백전' 이라는 통화를 너무 섣불리 발행하여,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등 시장질서 교란을 부추겼을 뿐, 피해만 남긴 정책으로 욕을 먹었다.

특히 그의 대외적 인식은 '쇄국'에만 몰두했다. 청나라와의 관계 외에는 대외관계에 무심했고, 기독교와 서양세력을 악의 세력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폐쇄적 인식은 '서원 철폐'로 인해 대립하던 수많은 '사림 유학자들'과 그나마 통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를 비롯한 소수의 '개화파'들은,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드디어 친정을 하게 되자, 조정에 들어가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척족 세력을 막기 위해서, 고심끝에 고종의 아내인 '민비'를 며느리로 삼았는데,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민비가 다시 '세도정치'를 부활시켰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통한 서양세력과의 직접적 분쟁들도 늘어갔다. 

특히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한 근대화 과정을 재빨리 수행하면서 서양을 철저히 베끼며 '부국강병'을 추구하고 있었다.

일본은 '정한론'을 통해 드디어 조선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하여 무력으로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침략 발판을 본격적으로 놓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선의 '개화파'들이 일본을 자주 거치게 되었고, 고종과 민비도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개화파들은 청나라의 개화론자들이나, 서양문물을 소개한 책 등을 통해서도 많은 감화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민중이나 사림 양반들은 금수나 다름없는 서양 및 일본과의 화친은, 똑같이 오랑캐가 되는 것이요, 매국이라 여겼다.

일본은 '강화도조약' 이후로, 기회만 보면 꼬투리를 잡아 무력으로 위협하며, 불리한 조건으로 조선을 압박해 들어갔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잠시 흥선대원군이 정권의 실세로 부각되는가 싶었으나, 청나라가 개입하여 일본과 은밀히 협의 후, 흥선대원군을 납치하고 군란을 제압함으로써, 고종과 민비는 자리를 보전했다.

일본은 이러한 개화파를 적극 지원하면서, '척화파'를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에 앞서, 조선을 선두적으로 침탈하기 위해 최대한 서둘렀다.

경제적 군사적 힘이 없어, 외세에 의지해 권력을 유지한 민비 세력과 고종의 조선은, 이미 반쯤 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였고, 지배세력은 이미 꼭두각시와 다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