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 - < 한국사 이야기 12 : 국가의 재건과 청의 침입 >

'임진왜란' 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조선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그나마 평양 이북의 지역인 함경도, 평안도 등은 명 군대의 지원으로 많은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그래도 피폐하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함경도 지역은 반란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민심은 떠날만큼 떠났다.

전쟁을 전후하여, 문화적인 변화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먹거리에 있었다.

일본을 통해서 담배가 들어왔고, 전국적으로 금방 골초들을 양산했다. 너도나도 담배를 뻑뻑 피워대기 시작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흡연을 금지시켰다는데, 광해군이 비록 담배연기를 싫어해 왕 주변에서는 안 피웠겠지만, 특별히 조선에서 흡연 금지령은 없었다.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흡연은 급속도로 퍼졌다. 담배는 빠른 속도로, 인기있는 환금작물로 떠올랐다.

또한 중요한 변화를 일으킨 주인공은 '고추'였다. 

고추를 들여온 일본 보다도, 우리나라 기후와 토양이 고추를 재배하고 말리기에도 적합하여, 특히 김치 재료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그 이전에는 후추 등 여러 향신료로 사용되는 것들을 넣었는데, 이제는 고추가 이들을 대체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빠져서는 안되는 음식이 되었다.

전쟁을 전후하여 들어온 것들에는 그 외에도, 호박이나 가지 등이 있었다.

조선은 그 난리를 치르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성리학적 명분론에만 사로잡힌 대다수의 신하들은, 명나라를 '자소지은'(字小之恩 :작은 나라를 지켜준 은혜), '재조지은'(再造之恩 : 다시 나라를 일으켜준 은혜) 하게 해준 데에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하지만 명나라 또한 온 사방에 난리가 나고, 조정은 부정부패와 투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만주와 요동 등지에서, 여러 여진족을 통일하고 황제를 자처하는 누르하치가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후금'의 성장세가 가파른 만큼, 동북아시아 정세는 요동치고 있었다.

유학의 한 갈래인 '주자학'은 중국에서 이미 대세가 아니었다. 왕양명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양명학'을 받드는 관료들이 대거 명나라 조정에 들어갔다. 

아주 간략하게 말해서, '양명학'은 형식과 명분에서 더 급진적이었다. 사람과 직업의 평등을 설파하는 사상이었다.

중국에서는 그 외에도 여러 사상들이 받아들여지는 상황이었지만, 조선에서 이러한 사상은 그저 '이단'으로 찍혀, '사문난적'으로 몰릴 뿐이었다. 

선조는 양명학 이론을 일부 수용하여, 특히 임진왜란 같은 난리를 왜 겪었는지를 생각하며, 문관만 너무 대우를 하고, 무관을 차별하는 기존의 고지식한 질서가 문제라고 하는 생각에서, 약간의 개혁을 해보려 했으나, 고지식한 대다수 사림파 문관들의 거센 반대로, 뜻을 펼 수가 없었다. 

유성룡 같은 사람도 그저 고지식하게 반대한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다.

선조의 첫 정실 아내가 자식을 못 낳았다는 불행은 또다시 조선을 혼란케 할 것이었다. 선조는 후궁을 통해서만 많은 자식을 낳았다.

그 중 하나가 '광해군'이다. 그는 선조가 전쟁통에 '파천'을 할 때에, 조정을 분리하여 맡는 '분조(分朝)' 를 통해 많은 활약을 펼쳤다. 

그는 어려서부터 형과는 달리 총명하고 올바른 처신으로 주목 받았고, 그래서 신하들과 왕은 그를 세자로 임명했다.

하지만, 나중에 들어온 선조의 아내가 아들을 낳음으로써, 선조는 전쟁 후 마음이 흔들렸다. 정실의 아들을 왕으로 앉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광해군에게 모질게 대하거나, 유언으로 확실히 이를 정리하지 못하여, 또 하나의 죄를 짓고 떠났다.

광해군은 일본 및 후금과 세력균형을 제대로 잡아 평화를 유지하고, 국내 개혁을 통해 정권 안정을 도모하려 하는 '실리외교'를 추구했다.

하지만, 그의 '오랑캐' 우대 정책은 고지식한 신하들의 반대와 계속 부딪혔다.

또한, 선조의 정실 아내로 '계모'였던 대비와 그 아들들을 정권 안정의 차원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이어졌다. 

이리하여, 골육상잔의 비극은 다시 벌어졌으며, 계모인 대비를 후궁으로 강등시켜, 서궁에 유폐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렇게 평탄치 않은 상황에서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은 유배를 가고, 선조의 손자인 '인조'가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인조'는 왕위에 앉은 것을 아마 많이도 후회했을 것 같다...

그는 할아버지가 겪은 치욕을 두 번이나 겪었다. 첫 번째의 '파천'은 잠시였으나, 청나라로 바뀐 '후금'의 침입으로 인한 두 번째 '파천'은 남한산성에서 모진 겨울바람과 같은 고생과 치욕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후금을 오랑캐 라고 간주하고, 그저 명나라만 오매불망 바라봤다. 

후금이 계속해서 한편으로는 명나라와 전쟁을 하면서도, 조선에게 계속하여, 기울어진 전세를 인정하고 교류를 트자고 했으나, 수 십년간 조선은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온갖 변명과 사술, 기망 등으로 임시방편을 가지고 상황을 넘기기 바빴다. 인조가 청나라 황제 '태종'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의 치욕을 겪기 직전까지도 저항을 계속 했다.

그나마 최명길 등 실리적 입장을 가지고, 후금(청)을 대우해주고 달래주려는 '주화파'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기에, 명나라만 바라보는 뻣뻣한 '척화파' 세력에 맞서 이 정도로 끝났다.

청나라 군대는 산해관을 넘어 자금성을 차지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질서는 청나라가 선도하는 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아버지인 명나라가 이제는 없다. 이제 조선은 태양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 그들은 현실을 이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크나큰 숙제가 그들 앞에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