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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잡지 플레이보이가 인터넷 기술 발달에 끼친 영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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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 잡지의 아이콘과도 같은 ‘플레이보이’는 의외로 굉장히 소프트한 잡지입니다.
흔히들 플레이보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머리속으로 자연스럽게 엄청나게 하드한 성인잡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만큼 유명하고 또 ‘제일 인기 많은 성인잡지’라는 타이틀이 있기 때문인데, 그런 이유로 인해 플레이보이를 포르노 잡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죠.
그러나 사실 이런 인식과는 달리 플레이보이는 포르노잡지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의외로 모르는 사실이지만, 플레이보이는 다른 경쟁 성인 잡지들에 비해 굉장히 소프트한 수위를 가지고 있던 잡지였는데요. 경쟁잡지라고 할 수 있었던 펜트하우스나 스파크에 비해서 훨씬 수위가 낮았고, 본격 포르노잡지였던 허슬러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잡지들은 레즈비언 연출이나 유사성행위 사진도 자주 등장했으며 허슬러는 아예 포르노배우들이 모델이었기 때문에 섹스화보를 촬영해 이를 실었지만 플레이보이는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기껏해야 플레이보이가 실었던 화보는 누드사진 정도가 다였죠.
그렇다면 어떻게 플레이보이는 미국, 그리고 전 세계 외설 잡지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이유는 '누구도 겨냥하지 않았던 판타지’를 구현했다는 점입니다. 창립자 휴 헤프너는 기존의 누드 사진이나 외설 잡지들을 보고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감흥이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이유는 뻔한 모델들이 나와서 무미건조한 상업용 사진만을 싣고 이것을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포르노 모델, 그리고 누드 모델이 아니라 그런 것 하고는 관련이 없는 일반인, 더 나아가서는 사회 고위층 미인의 누드라는 섹스판타지를 자극할 생각을 하기에 이르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전문 누드모델’이나 ‘포르노 모델’, 그리고 외설 잡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글래머 모델들은 식상함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매체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녀들은 단골 소재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찾기는 힘들었죠. 마치 현재 우리가 익숙한 AV배우들이나 우리나라 성인영화 배우들, 그리고 벗방이나 여캠 BJ들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플레이보이는 이런 맹점을 과감하게 파고들었습니다. 누드 모델이 아닐 것 같은 모델, 처음 보는 어떤 모델의 누드 사진을 제공한다는 것 자체에 많은 남성들이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죠. 이것은 마치 작금의 인스타그램 등에서 ‘직업은 물리치료사인데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선보이는 모델’이 인기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플레이보이에는 실제 전문 모델이 아닌 이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변호사, 아이비리그를 다니고 있는 여대생, 교수, 군인, 검사, 의사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애초부터 휴 헤프너가 모델을 선별할 때 천박하거나 인조미가 있거나, 혹은 전문적인 모델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문신이 가득한 프로필도 전부 제외했다고 하죠. 포인트는 ‘실제 있을 법한 사람’, ‘예쁜 학교 퀸카인데 모범생’같은 스타일을 가장 선호했다고 합니다. 더 이상 단순히 여성의 헐벗은 화보로 섹스어필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났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물론 시작은 마릴린 먼로의 누드 사진이었지만 이러한 플레이보이의 기조는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이후에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플레이보이에 출연해 전문 모델이 된 이들도 생겨났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탐독할 수 있는 굉장히 수준 높은 잡지’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플레이보이는 성인잡이지만 커버나 몇 장의 화보를 걷어내고 나면 성인잡지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내용이 굉장히 충실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로 플레이보이가 진출했을 때도 구매한 독자들이 두 번 놀랐는데, 처음 놀란 것은 수위가 너무 낮아서였고,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실린 기사들의 퀄리티가 매우 높아서였습니다(그리고 재미있는 기사들이 많아서 여성 독자들도 상당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SF소설과 판타지, 그리고 에세이 등입니다. 미국 스릴러계의 거장인 스티븐 킹도 플레이보이에서 연재를 한적도 있고, 수많은 SF노벨 거장들이 플레이보이에서 연재를 해서 이 모음집들을 따로 엮어서 출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소설 컬렉션이 굉장히 수준이 있었기 때문에 커버걸의 화보를 눈요기로 보고 소설을 정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죠. 지금도 미국 SF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찬양을 하는 사람들이 플레이보이에 실린 당대 최고 SF작가들의 작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국내에도 '플레이보이 SF 걸작선'으로 2002년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바 있었고, 이 앤솔로지는 SF팬들의 로망 중 하나라고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플레이보이를 통해서 작품을 투고하거나 혹은 연재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사실. 수위가 낮다고는 해도 플레이보이에 누드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어 원래 직장에서 해고가 되는 일들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작가들은 플레이보이라는 잡지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이 없었던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편집의 수준이 굉장히 높고, 또 작품 선별 기준 또한 퀄리티가 높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신인 작가들이 플레이보이를 통해 등단하기도 했죠.
이 저변에는 창립자 휴 헤프너의 인텔리 경력도 한몫 했는데요. 휴 헤프너는 일리노이 주립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노스웨스턴 대학원 사회학 석사, 그리고 에스콰이어 매거진 편집자를 거쳤죠. 기본적으로 퀄리티 있는 문학, 그리고 글로 된 콘텐츠를 가려내는 데 있어서 탁월한 안목을 보유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인터뷰도 굉장히 다채로웠고 또 거물급 인사들이 줄을 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당대 굵직한 저명 인사들의 인터뷰를 보기 위해 구매를 하기도 했습니다. 존 레논,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그리고 1990년 도널드 트럼프의 인터뷰도 실렸었죠.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 이후 미국 매체와 처음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그게 플레이보이였습니다. 거액을 주고서라도 이런 인사들의 인터뷰를,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대담집으로 꾸려놨으니 그야말로 읽을거리와 눈요기, 그리고 소소한 가십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잡지인 셈입니다.
물론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2020년을 끝으로 그동안 고전을 거듭해 왔던 인쇄잡지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플레이보이지만, 외설적인 성인잡지라는 편견과는 달리 충실한 콘텐츠와 읽을거리가 가득했으며 남성의 섹스판타지를 자극하는 발칙한 기획으로 성공한 잡지라는 것은 분명 주지의 사실일 것입니다.
이런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저 짤방에서 나오듯이, 한 케이블 방송프로그램에서 김상욱 교수라는 사람이 한 저 발언 때문입니다. 저 프로그램은 다들 아시다시피 세상에 있는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주 내용인데요. 저 대목에서 김 교수는 "워터마크는 플레이보이가 만들었다", "이를 추적하는 스파이더라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1999년 기준 인터넷으로 번 돈의 50%는 포르노 산업이다"라는 발언을 합니다.
우선 플레이보이의 최전성기는 1970년대인데, 이 이후 1990년대를 기점으로 최정점에서 하락세를 찍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인터넷과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들로 인해 출판 시장이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인데, 김 교수는 ‘웹브라우저가 만들어지고 난 뒤 포르노 산업이 이로 인해 크게 돈을 벌었고 그 중 플레이보이가 있다’라고 말하고 있죠. 이는 명백히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플레이보이가 폐간을 한 이유는 인터넷에 범람하는 새로운 성인물 패러다임을 쫓아가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워터마크 이야기입니다. 워터마크와 그를 추적하는 스파이더라는 프로그램을 플레이보이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 또한 명백히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워터마크를 맨 처음 개발한 것은 일본 NEC연구소로, 이미지 사운드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데이터에 특정 코드값을 집어넣어 인터넷상에서 디지털저작물을 보호하는 기술을 최초 개발한 것이 시초입니다. 그리고 이 기술을 통해 97년 미국의 디지마크가(Digimarc)사가 월 오천만건 이상의 불법 복제물을 검색 판별(막스파이더:Marcspider)하는 불법 콘텐츠 추적기술을 상용화 한 것으로 이어지는 것인데요. 이는 ‘디지털 워터마크’에 한정된 이야기이고, 인쇄물에 워터마크를 개발한 것은 1660년대 유럽 스웨덴의 스톡홀롬은행의 설립자가 위조지폐를 구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시초입니다.
영상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논조나 분위기는 범죄적이거나 혹은 불법적인 행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성인물, 혹은 포르노 시장에 경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예단을 내린 뒤에 말하는 듯 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죠. 북미에서 포르노 산업은 이미 합법화가 된 지 오래인데 이것을 불법적인 산업으로 여기는 듯한 뉘앙스는 묘한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마치 저 사람의 머리 속에서 불법을 자행한다는 편견을 말하는 듯한). 애초부터 ‘범죄’와 관련된 프로그램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는 아님에도 굳이 성인물 시장을 끌어들여 이야기를 한 것부터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성인물 시장을 범죄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심각성을 얘기하고자 든 예시가 전부 다 팩트가 아닙니다. 더욱이 인터넷 수익의 50%가 포르노 시장에서 나왔다는 근거와 집계는 어디인지 밝히지도 않았으니 온통 그의 머리 속에서 나온 ‘카더라뿐이죠. 근거가 빈약하고 그 근거가 명확한지 알아보지도 않고 저것을 방송에서 내보냈다는 건, 그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자극적인 소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 저 김 교수라는 사람은 비슷한 종류의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논할 때 상당히 잘못된 견해를 많이 드러내서 자신의 분야가 아닌 부분에서 이야기를 하는 데 경솔하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었습니다(조조의 서주대학살을 모르고 시민들을 안전하게 이주시키고 지킨 훌륭한 인격의 지도자라는 이야기 등등). 그리고 나영석PD사단이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은 최근 인터넷 등을 통해 잘못된 사실을 교묘하게 포장해서 방영했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며 빈축을 사고 있죠. 물론 식견과 지식에 있어서는 저보다 박학하실 것이 분명하지만, 물리학박사라는 자신의 타이틀과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전문 분야가 아닌 점을 이야기할 때는 보다 신중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듯한 언행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고정 팬들도 적지 않은 프로그램 시리즈에 나와서 발언하는 것은 적지 않은 파급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런 파급력을 잘 알고 있는 방송국과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소재라는 것 때문에 적확한 사실을 체크하지 않고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내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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