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공포포럼 입니다.

단테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렇게 서럽게 울게 될 줄은 몰랐다. 무당할머니의 손이 가슴팍을 뚫고 들어와 심장을 어루만지고 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따스했고 후련했다. 

열대야가 시작된 듯한 무더운 밤이었지만 단테는 왠일인지 으슬해서 몸을 연신 부르르 떨었다.

태규쌤이 다 먹은 막걸리병을 상 아래로 내렸다. 이미 상 아래 쪽엔 다 마신 막걸리병 서너 개가 가지런히 서 있었다. 태규쌤은 말없이 막걸리잔을 들고 단테를 개구지게 바라보며 잔을 한번 더 살짝 들어올렸다.

"아 넵.."

단테는 막걸리잔을 들고 가볍게 짠을 하고 원샷을 했다. 술이 들어가기 좋은 분위기였다. 꼭 대학 동아리 친구들과 단골술집에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술잔이 가벼웠다.

"캬~~ 좋다. 쇽이 쉬원하죠? 울어버리니까.."

".. 네..  아.. 좀.. 부끄럽더라고요.. "

"요즘 일이 많았잖아요. 아마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였으면 버티지 못하고 어딘가로 숨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단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 그랬을까요?.. "

"그건....  모르죠... 허허허 .. 오늘 굿을 주제하쉰 분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하시는 만신（萬神）이에요. 표란（豹蘭） 선생님이라고.. "

"아...   그런데 선생님. 만신이 뭐에요?"

"만신.. 무당을 높이는 말.. 모든 신들을 대신하는 사람.. 표란선생님은 진짜 만신..  사이비 아니고.. 그런 분이 특별히 달래주셨으니 누구라도 그렇게 울었을 겁니다."

단테는 그 이름을 듣자 가슴이 떨리며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시금 눈물이 속 안에서 잔잔히 일었다. 

굿이 끝나자 모였던 사람들 모두가 자리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막걸리에 편육에.. 잔치음식들이 상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큰 울음을 낼 줄이야... 단테는 새삼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 아까 북 치실 때 선생님 진짜 멋있더라고요.. "

"껄껄.. 그랬어요?.. 제가 평상쉬엔 좀 후줄근하죠.. 허허허.. 슈학션섕님이셨던 단태��이 퇴마샤이셨던 것처럼.. 저도 부캐가 있어요 허허. 전 부캐가 더 좋아요. 본캐보다... 돈만 많았으면 그냥 확 본캐 때려치우는 건데..껄껄"

술에 취하셨는지 태규쌤의 발음이 더 많이 샜다. 단테도 알딸딸 해졌다. 막걸리를 한 잔씩 더 기울였다. 막걸리잔을 놓자마자 태규쌤이 크으~ 하며 김치를 집어 먹었다. 또 그 개구진 표정을 지어냈다.

".. 이렇게 하다간 친해지지도 못하고 날 세겠네요.. 이쯤에서 말 낮추고 형-동생 반말도 하고 그러고 싶은데.. 단태��은 어떠세요?"

"아.. 네 선생님 말씀 낮추셔도 되요."

"아 그럴까? 껄껄..  단태야.. 나 진짜. 궁금한게 있었어.."

".. 뭔데요? ..."

"아 단태도 존댓말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셔로 반말하자.. 중간 중간에 형만 넣으면 될 것 같은데?"

술에 취해서 그런걸까. 단테가 평소에 알던 태규쌤이 아니었다. 곧게 세운 허리에 떡 벌어진 어깨..   보정속옷이라도 입은 것 같았다. 말과 표정에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너가 올려놓은 유튜브 방송보니까. 비너리어가지, 아스파라서스 꽃잎.. 그게 도대체 다 뭐야?"

"아.. 그거..  사연이 좀 긴데.."

".. 내일 토요일이고~!! 넌 정직이고 껄껄껄.. 밤을 섀서라도 듣고 싶네? 껄껄.. 아니면 비밀인거야?"

"아니 형..  비밀은 아니고.. 뭐 방송할 때 다 말하긴 해서. 사람들이 믿는지 안믿는지는 모르겠지만..  음.. 간단히 말하면 내가 16살때부터 미국에서 부두술을 배웠거든 20살? 그때까지... 그때 아프리카산 식물들 키우는 법을 가르쳐주더라고.. 그 식물들 이름이 비너리어, 아스파라서스.. 뭐 그런거야.."

"..그게 다 진짜 있는거야? 구라아니고? "

"응 구라 아니야.. 인터넷 검색해봐.. 실제로 다 있는거야.. 아 근데 거의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멸종된 식물이긴 해.. 내가 지금 키우고 있는 것도 가르쳐주신 스승님한테 종자 겨우 받아서 키우고 있고... "

"직접 키우고 있구나..  아프리카면 집에 온실같은 데서 키우는거야?"

"응. 작은 온실이 있어서 거기서 키우고 있어."

"와 돈 많네.. 유튜브 보니까. 돈 많이 버는 것 같더라.. 그러면 부두술은 뭘 어떻게 하는거야?""

"... 그게 뭐.. 절대 영화같이 화려하거나 음침하진 않고.. 그냥 식물을 잘 키워서 용도에 맞게 쓰면 되요. 예를 들어..  비너리어 가지는 보통 귀신들린 몸에 아무렇게나 박아 넣으면 귀신이 떨어져 나가고..  ..... 이게 믿어질 진 모르겠지만.. 암튼 그래요."

"또.. 또 존댓말 쓰네.. 말 편하게 해~"

"아.. 형 알았어.. 이게 쉽지 않네.. "

".. 단태가 몸이 좋은 이유가 있었네. 결국 그냥 피지컬로 찍어 누르는 거잖아."

"응..  웃기지만. 부두술 배운다고 해서 제일 많이 배운 게 복싱이랑 주짓수였어.. ....  식물은 상황에 맞게 어떨 때 어떻게 쓰라고 알려주고..  근데 각 식물마다 개성이 있어서 좀 키우는 방법이 특이하긴 해.."

".. 이거 비밀 아니냐? 보통 이쪽 계통은 엔간한 건 다 비밀로 하는데.."

"아냐.. 형. 구글에서 'Voodoo Academy'라고 치면 18번째 페이진가? 거기에 학교링크 있을껄? 아직 링크가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진짜 이름이 부두 아카데미야? 그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신당에서 받는 무속인 수업같은 거네.. 껄껄껄껄..  재미있네..  부두술이라...  근데 그걸 왜 배운거야? 왜 하필 부두술? 그게 궁금하다 야."

단테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막걸리를 또 한잔 들이켰다. 태규쌤 역시 단테를 따라 술을 꿀떡꿀떡 마셨다.

".. 말해주기 싫으면 말 안해줘도 돼~~  저얼~대 강요하는거 아니니까.."

"... 형..."

"..응...."

".. 형은 진짜로 귀신이나 영혼이 있다고 믿어?... 형이 민속학 강의도 하고 있고.. 또 굿판이나 무속.. 이쪽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는데.. 정말 그런게 실제한다고 믿어? .."

태규쌤은 의아한 듯 단테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뭘 그런걸 물어보냐는 듯 답했다.

"당연하지. 믿는게 아니라 .. 쉴존하는 거니까.."

"어떻게 그게 실존한다고 생각하는거야?"

"내 몸에 붙어있거든.."

태규는 오? 하고 놀라는 단테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강신이야... 보통 쉰내림이라고 말하지.. 신이 내 몸에 나랑 같이 샬고 있어... 나와 함께 감각하고 섕각을 나누고.. 자신이 가진 힘을 나누어 주고 있어.."

"전혀 몰랐네.... 오늘 뭔가 형 몸이 좀 탄탄해진 것 같긴 하던데.. "

"어.. 아주 신났어.. 오늘 굿판에 오니까..  힘 조절을 못하네.."

"혹시 그럼 전국에 굿판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어.. 맞아.. 내 몸에 붙은 친구 밥 주는 거지..  굿판 되게 좋아하거든.. 물론 나도 구경하는거 좋아하고.. 자기가 쉰나면 내 몸에 힘이 쫙 들어가..  물론 어디가셔 이런 얘기하면 미친놈 소리 듣지만... 좋네.. 이런 얘기 편하게 할 수 있는 직장동료가 있다는게 껄껄껄.."

"보통 그런 경우에는 신당 차려서 무당같은 걸 하지 않아?"

"내 안에 든 신은 딱히 그런 걸 원하진 않더라고..  신내림굿같은 걸로 들어온 게 아니거든.."

"그럼 어떻게 강신이 된 거야?"

"이 얘길 들으면 다 멍청한 놈이라고 핀잔을 주더라고.. 나 이혼했거든...  그�� 그게 왜 그렇게 슬펐는지 몰라.. 아무 것도 아닌데.. 암튼 그때 딱 자샬을 결심하고.. 차 끌고 강릉에 가서 해변가 아무 횟집이나 들어가서 회 한접시에 매운탕 딱 먹고..  하조대 바위에 올라가서 그냥 술기운에 바다로 뛰어내렸어..   운이 나빴는지 다친 데 없이 해변가에서 아침에 깨어났는데.. 그때 신이 붙었더라고.. "

"대박...  그렇게도 신이 붙는구나.."

"그냥 신도 아니야..  엄청 큰 신이었어..  내가 그릇이 크다고 얘기하시더라고..  작은 그릇에는 들어오지도 못할 신이래.."

"지금은 좀 괜찮아?.."

"아이고.. 아무 일도 아니었어... 섕각해 보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지.."

둘은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근데 왜 나한테 영혼을 믿냐고 물어본거야?"

"..  사연이 좀 길어. 형..  나도 간단하게만 얘기해줄께..  음.. 혹시 형 10년 전에 '의대교수부부 살인사건'이라고 알아?"

"알지 알지.. 그때 진짜 떠들썩했는데.. 그것이 알고 쉽다에서도 다뤘던 걸로 기억하는데.. 미스터리한 사건이었지.. 무속인들끼리는 공공연하게 귀신 짓이라고.... 어? 설마..."

"응.. 우리 부모님이셨어..."

"아...."

"뭐.. 이젠 꽤 무던해졌어. 근데 당시에는 진짜 복수심에 불타 올랐었지.. 진짜 그때 미친놈 취급 많이 당했어. 부모님이 귀신한테 죽임을 당했거든... "

"하긴.. 그걸 사람들이 이해해 줄 리가 없지.. 진짜 힘들었겠다. 고섕 많았네..."

"정확히는 귀신들린 남자였는데..  그 귀신한테 복수할려고 굿도 해보고 살도 날려 보고, 부모님 돌아가시고 1년동안 부모님이 남겨주신 돈 엄청 가져다 바쳤가며 해봤는데... 이게 보통 귀신이 아니더라고.. 뭐 아무 것도 통하질 않는거야..  아예 무당들이 무서워서 도망을 치더라니까.."

단테의 비워진 잔에 태규가 술을 따르자. 다시금 둘은 원샷을 했다. 정신이 조금씩 흐물거렸다.

"그래서 깨달았지.. 아.. 이 귀신은 정말 강력하구나...  이곳의 퇴마술을 다 마스터한 귀신이구나...  그 길로 인터넷 검색해서 좀비다 뭐다 유행타고 있는 부두술이 딱 눈에 들어와서 미국으로 배우러 갔네? 가서 식물 키우는 거랑 복싱이랑 주짓수 배우고 왔지 뭐.."

"뭔가 웃프네..  그래셔 복수는 했어?"

"20살 때 돌아왔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더라고..  이게 계속 사람들 몸을 타고 돌아다니는 거 같아.. 아마 새로운 몸을 찾았을 것 같기도 하고..."

"그게 그렇게 쉽게 될까? 그렇게 강력한 귀신이었으면 그릇이 큰 몸이 있어야 될텐데..   어지간한 몸이 아니면 몸 자체가 견디질 못해 터져버릴 수도 있는거고.."

단테와 태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아..  암튼..  뭔가 좀 속이 시원하다.. 진짜 형..  이런 얘기를 터놓고 해보는게 정말 오랜만이야.."

"아니..  이런 얘기는 우리가 전문이지.. 뭐 난 반당.. 무당에 반만 걸치고 있긴 하지만...  귀신이랑 사람 달래는 건 한국 무속이 제일 아니겠냐.."

"그러게.. 사실 부모님 복수한다고 만났던 무당들이 다들 사이비였었거든..  "

"뭐.. 사이비들이 많긴 하지.. 대부분 잡신들 데리고 있기도 하고.. 세상이 다 그렇잖아.. 진짜는 정말 얼마 없지..   어???  저기 진짜가 오신다."

단테는 고개를 돌려 태규가 바라보는 쪽을 보았다. 신복을 벗고 평상복 차림이 된 무당할머니.. 표란선생님이..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내면서. 단테를 지긋이 바라보며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