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공포포럼 입니다.

살인사건이었다.

2차, 3차........ 끝없이 이어진 회식 후 술에 잔뜩 취해 골목길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피해자의 뒤통수를, 각목으로 수 차례 내리쳤다. 피해자는 쓰러졌고, 경추골절로 사망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각목으로 연거푸 내리쳤다. 각목이 부러지자 피해자의 시체 위로 올라가 쿵쿵 발을 구르고 춤을 췄다. 그는 말 그대로 광인처럼 웃다가 인근 주민의 신고로 체포되었다.

“딱 봐도 범죄자 상이었어, 그 새끼.”

심창균. 23세. 무직. 그의 프로필을 본 선배가 말했다.

“내가 맨날 얘기하잖아. 사람은 20살까진 사는 대로 생기다가 20살부턴 생긴 대로 살게 된다고. 살아온 인생이, 품어온 가치관이 쌍판때기에 다 드러나게 돼 있다고. 이 새끼는 딱 범죄자 상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전자담배를 꼬나물고 연기를 들이켰다.

“에이, 또 그놈의 관상 타령. 아예 신내림을 받으시라니깐요.”

내가 빈정거렸다. 선배는 아랑곳 않고 그의 개똥철학, 개똥관상학을 설파한다. 개똥보살의 개똥철학관이 열렸다.

“잘 봐봐. 주둥아리가 뭔 미운 오리 새끼마냥 툭 튀어 나왔어. 매사에 불평불만이 가득하다는 거야. 눈까리도 봐봐. 초점 없이 흐리멍텅하지. 현실감각 없이, 자기 망상 속에서,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현실과 단절된 채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이게.”

“정신병적 발작으로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죄라는 겁니까?”

후배 상훈이가 물었다.

“비슷해. 심신미약 판정은 받겠지. 근데 또 흔히 통하는 정신병에는 못 미칠 정도일 거야.”

그는 다시 전자담배 연기를 들이켰다.

“정답은 피해의식. 심창균은 피해자 김민준에게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어.”

심창균은 고아원 출신이었다. 부모님은 한국에 불법 체류중인 조선족이었는데, 같이 일하던 공장에서 눈이 맞아 심창균이 생기자 시골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그를 키웠다고 한다. 그러다 두 사람이 죽고, 친족도 없는 심창균은 고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아원은 환경이 좋지 않은 곳이었다. 원장은 아이들을 학대했고, 그 와중에서도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서열을 나누고, 편을 가르고, 끝도 없이 싸워대는 정글이요, 먹이 피라미드였다.

그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에는 심창균이 있었다. 그의 부모는 여태껏 중국에서 살아왔다. 그곳에서 만 18세가 넘도록 주입받아온 사상교육은 그들로부터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씻겨냈다. 한국에 와서 돈을 벌게 됐어도 그들의 고국은 중국이었고, 우리말 보다 중국어가 더 익숙했다.

당연히 그 아이도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한국어를 더듬었고, 한글을 완전히 뗀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더욱이, 경찰의 눈을 피해 노숙도 자주 했고, 사람이 적은 시골 마을의 폐가에서 몰래 숨어 살기도 했었다. 영양상태는 따라서 최악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그는 키가 100cm를 가뿐히 넘었을 정도였다.

심창균은 약육강식의 정글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따금 따돌림을 당하면 중국어로 혼자 중얼거린다고 시비를 걸렸고, 비실비실해서 반격도 못 한다고 자주 맞았다. 자기보다 두 살이나 어린 아이들도 그를 만만하게 볼 정도였다. 위아래로 수도 없이 맞아가면서 자랐다.

중학교 이후, 고아원보다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서서히 늘어났다. 하지만 학교 또한 그의 안식처가 되지는 못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고 하던가? 고아원보다 더한 힘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그는 졸업할 때까지 왕따, 셔틀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성적은 바닥을 기었다. 당연했다. 양아치들 수발을 드느라 공부고 뭐고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고 그는 말했다. 교사들도 그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명문대 갈 아이들 관리하느라 교장부터 그들을 닦달했는데, 고아 따위 신경쓸 새가 어디 있다고 말인가.

결국 그는 변변한 대학에도 못 갔고, 원장에게 내쫓겨 그 근방의 가장 싼 고시원에 들어갔다.

같은 고씨 문중의 원자 항렬인 고시원. 그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보증금을 받지 않는 대신 집세가 다달이 밀렸고, 그럴 때면 고시원 주인에게 고아원 원장에게 듣던 것 이상의 폭언과 욕설을 들었다.

아르바이트는 하는 족족 잘렸다. 일머리나 사회성이나 일반인이라면 갖추고 있을 법한 것이 그에겐 아무 것도 없었다. 언제나 당하는 입장, 피해 보는 입장이었던 그에겐 이미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큼직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자신에게 없는 것들을. 그것이 왜 자신에게 없는지 생각해냈다. 따뜻한 가정 말이다. 적어도 부모님이 살아있었더라면 중국에 강제로 송환돼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에겐 가정이 있을 터였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로 돌렸다. 부모님을 죽게 한 원수, 김민준에게 말이다.

심창균은 마지막 남은 전 재산을 복수에 때려 박았다. 흥신소에 의뢰해서 녀석의 집과 직장을 찾아냈다. 원래는 녀석의 집을 찾아내 가족들을 전부 죽이고 가정이 박살난 자신과 똑같은 꼴로 만들어버릴 생각이었지만, 녀석이 사는 아파트는 경비가 삼엄해 그냥 귀가하는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조서 내용 들어보니까 피해의식이랄 것까진 없던데요?”

“거기까지만 봤으니까 그렇지.”

선배는 사건 속의 숨은 진실을 이야기 해주었다.

선배가 직접 겪은 아니고, 몇 다리 건너 들었던 일이란다.

어느 시골 경찰서에 한 남자가 잡혀 들어왔다. 젊은 나이에 중소기업을 운영했고, 만삭의 아내까지 있는, 수완 좋고 건실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남자에겐 시골에 귀농해 살던 외삼촌이 있었는데, 사건 당시로부터 몇 년 전 죽었더란다. 삼촌은 아내, 즉 남자의 숙모와는 진즉에 이혼하고 슬하에는 자식 하나 없었기에 유산은 모두 유일한 조카인 남자에게로 돌아갔다.

어느 날, 남자는 사업 상 큰 손해를 보게 되어 재산을 여럿 처분하게 되었다. 외삼촌의 시골집까지 말이다. 헌데, 그가 찾아간 시골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외삼촌이 죽은 이후 딱 한번 빼고는 그 집에 찾아간 적도 없었다. 집문서나 땅문서 등 중요한 건 전부 그의 수중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누군가가 불법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남자는 집에서 약 300m 떨어진 고개 아래쪽에 차를 세웠다. 살금살금 집 가까이 올라가 창고에서 빼낸 각목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여름철이라 활짝 열려있는 창문의 방충망을 뚫고 크게 소리치며 집 안으로 쳐들어갔다.

“너희들 뭐야, 이 새끼들아!”

안에는 난생 처음 보는 일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어눌한 한국말로 대답했다.

“사, 살려 주세요!”

그들은 의외로 덤덤하게 손을 천장을 향해 뻗었다. 어쩐지 덤덤한 태도. 그것이 남자의 성질을 긁었던 것 같다. 그는 곧 군생활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중대에서 알아주는 무시무시한 악마 선임이었던 그 기억을 말이다.

“......대가리 박아.”

그가 짧고 굵게 말하자 집안에 들어살던 일가족의 남편, 또 아내가 바들바들 떨어댔다.

“대가리 박으라고!”

각목이 소파를 내리치자 껍데기가 찢겨져 나가며 안에 있던 스펀지가 튀겼다. 부부는 화들짝 놀라 말 그대로 바닥에 쫙 엎드렸다가 머리를 땅에 쿵 부딪혔다.

“새끼들이 장난질을 하나!”

그는 다시 각목으로 벽을 후려쳤다. 벽지가 뜯어져 나갔다. 자고로 그 ‘대가리 박아’ 자세는 머리만 땅에 두고 두 팔을 등 뒤로 올리는 자세인데, 손을 머리랑 같이 땅에 대고 있는 걸 보니 또 성질을 긁었더란다.

남자는 씨-발 하고 경찰에 전화를 했다. 불법주거침입죄, 어쩌구저쩌구 분노를 억눌러가며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통화가 끝나고, 약 30분 내로 도착한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그는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가족들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잘은 기억 안 나지만, 너네 뭐하는 놈들이냐, 왜 남의 집에서 살림을 차리고 사냐 등등 처음엔 별 심한 소리도 아니었단다. 하지만 “동포끼리 좀 봐주시라요.”라는 한 마디가, 분노에 제대로 불을 지폈더란다.

대화에는 욕이 점점 섞여 들어갔다. 급기야 “너희들 불법체류자지? 내가 너네들 평생 콩밥 먹게, 아니, 너네 나라로 송환 보내서 다 총살시키라고 할 거야!”라는 한 마디에 남편이 들고 일어섰단다. 남자는 의도 반, 실수 반으로 그의 옆구리를 각목으로 후려쳤고, 남편은 거실바닥에 다시 쓰러졌다. 부검의들 소견으로는 그때 아마 갈비뼈가 부러졌을 거란다.

남자는 다시 남편에게 “대가리 박아”를 시켰고, 통증 때문에 앉을 수조차 없던 남편이 계속 넘어지자, “똑바로 안 해!”하고 일갈했단다. 남자의 폭언은 그칠 줄을 몰랐고, 각목을 잡아들고 삿대질을 하듯이 흔들어댔다.

구석에 앉아있던 일가족의 아들은 한 편으론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부모를 구해야겠다는 의무감에 돌연 부엌으로 향했다. 남자의 외삼촌이 남겨두고 떠난 녹슨 식칼로 뒤쪽에서 남자의 장딴지를 찔렀다.

남자는 아이가 괘씸했지만, 그래도 아이니까 라는 생각에 각목을 휘두르는 대신, 멱살을 붙잡고 벽면으로 내던졌다. 아이는 가벼운 찰과상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가 눈앞에서 저렇게 당하는 꼴을 보자 부모는 두 눈이 뒤집혔다.

아내는 곧장 일어나 남자의 멱살을 쥐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남자의 덩치가 있는 탓인지, 팔뚝의 옷깃만 붙잡는 데 그쳤으며 이마저도 남자가 뿌리치자 맥 없이 뒤로 고꾸라져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남자의 외삼촌이 그 옛날 벽에 매달아두었던 무거운 액자가 떨어지고, 머리에 맞아 아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마저 달려든 남편은 좀 더 오랫동안 살 수 있었다. 왼쪽 척골과 광대뼈가 각목에 맞아 뇌사 상태에 빠졌다. 그는 경찰이 오고, 남자가 구치소에 수감 된 와중에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남자는 여러 사항이 참작되어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집행유예 6년을 선고받았다.

이 남자가 김민준이고, 나머지 이야기는 지금 알게 된 사항 그대로란다.

“너 이제 심창균이가 어떻게 될 것 같냐?”

선배가 물었다.

“글쎄요. 제가 검사나 판사가 아니라서 잘.”

내 실없는 대답에 선배는 전자담배의 연기를 입으로 들이마신 뒤, 도로 코로 내쉬었다.

“아까 XX방송 사쓰마와리 카메라 들고 온 거 봤지? 이제 걔는 방송을 탈 거야. 기레기들은 무슨 조선족 차별, 학교폭력 피해자, 이런 걸로 녀석을 포장하겠지. 그러면 이젠 인권단체, 시민단체가 몰려들 거야. 거기 소속에 그 사람, 그, 뭐냐? 요새 그 유명한 인권 변호사. 그 양반 덕도 보겠지. 심신미약이네 불우한 과거사네 우발적 범죄였다고 주장하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거야. 어디 감호처분도 받을 거고.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로 뒈져.”

“네? 왜요?”

“김민준 아들내미. 올해 18살이라고 하더군. 아마 소년법 때문에 감형 받을 거야. 그러면 대중들에게 김민준과 함께 차별주의자, 살인마 부자라고 낙인이 찍히겠지. 우리들 눈엔 누가 누구고 간에 다 똑같은 범죄자들일 뿐인데 말이지.”

“정말 그럴까요?”

“그러게. 나도 그럴 일 없었으면 좋겠다.”

선배의 별명은 박수무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