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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규어르신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단태님.."
표란은 주름 가득한 얼굴로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겉모습은 60대 할머니 같았지만 목소리는 맑고 단호했다. 입술사이로는 잘 관리된 하얀 치아가 가지런했다.
"안녕하세요. 표란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표란의 쪽진 머리 뒤로 불꽃 하나가 타올라가며 사그라 들었다.
"이놈 태제야! 멈추거라. 고얀놈같으니.."
표란 뒤로 태제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 넌.. 태제.. "
"서로 이미 인사를 했군요. 다시 제대로 인사드리거라.."
태제는 싫은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제대로 인사했어..."
표란은 태제의 엉덩이를 걷어차버렸다.
"안녕하세요.. 단태형.."
"이놈은 제가 거두어 키우고 있는 고태제라고 합니다."
"아 네.. 태제야 안녕~."
태제는 얼굴에 심술을 담았다.
"표란션섕님. 오늘 애 많이 쓰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영고（瀛姑）어르신.. 갑작스레 북을 맡아달라고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저도 오랜 만에 아주 즐거웠습니다."
"그럼 앉으실까요?"
태제는 쪼르르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표란은 자리에 앉자마자 막걸리 두 병을 대접에 부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고 놀라는 단테와 눈이 마주쳤다. 맑은 목소리가 표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크.... 오늘 날이 끝나기 전에 단태님과 친해질려면 저도 시원하게 마셔야지요."
"네? 저랑요?"
단테는 이게 무슨 영문인지 태규를 쳐다 보았다. 사실 태규가 이곳에 단테를 부른 이유는 둘을 만나게 하려는 데 있었다. 태규는 이번 시귀사건으로 단테가 운영하는 인터넷카페와 유튜브를 탐독했다. 단테는 일상과 퇴마를 장난스럽게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영상 속 단테의 몸에서 특이한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단태야. 샤실 네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왼쪽 가슘 위로 숀가락자국이 있는 걸 봤거든.. 여름에 찍은 영상인데 나시티입고 '너는 이미 죽어있다..' 이러고 막 장난 치면서 어렸을 때 다쳤다고 했던 영상."
"어... 맞아.. 그런 영상 찍은 적 있어...."
"혹쉬나 해서 .. 그게 단슌한 샹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섕각이 들어서.. 오늘 굿판 구경도 하고 표란선생님도 뵈면 좋겠다 싶어 겸사겸사 부른거거든."
그때였다. 표란은 앉은 채로 상의 목부분을 오른손으로 끌어내렸다. 으드드득 옷감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어깨가 훤히 드러났고, 겨우 가려진 젓가슴 위로 손가락 두께만한 동그란 상처 5개가 선명히 보였다. 태규도 갑작스런 표란의 행동에 당황한 듯 보였다. 표란은 토끼눈이 된 단테에게 청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것과 비슷한게 단태님께 있습니까?"
왠일인지 단테는 주저하지 않았다. 술기운이었을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입고 있던 반팔을 휙 하고 벗어버렸다. 188cm의 큰 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 보이는 근육들이 단테의 상체를 꽉 짜고 있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모두 단테에게로 집중되었다. 오오 놀라는 소리가 탄식과 함께 들려왔다.
단테의 왼쪽가슴에는 손가락 두께만큼 동그란 상처가 패이듯 나있었다. 5개... 표란의 것과 같았다. 표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이끌린 태제가 넋을 잃고 단테를 바라보았다.
단테는 다시 옷을 주워입었다. 표란도 걷어내린 상의를 올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단테네 테이블 근처로 모여들었다.
"단테님. 그 상처를 준 귀신을.. 찾으셨나요."
"아뇨. 찾지 못했습니다."
"그 상처 어떻게 얻게 되셨는지.. 제가 직접 연유를 알아봐도 될까요?"
"네? 직접이요?"
"네.. 제 손을 잡아주시면 좀 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
단테가 어리둥절하며 내민 손을 표란이 공손히 잡았다.
아... 아... 아....?
무언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심연.
눈을 감았을 때 보이던 그 풍경이었다.
아지랑이같은 하얀 구름들이 심연속을 자유롭게 유영했다.
저건 손인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손이 분명해보였다.
손이 심연의 틈을 비집어 벌릴 때마다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내 의지가 필요하다고?
...
자... 이거야..
# # # # # # # # # # # # # # #
15살의 단테.
파묻힐 만큼 푹신한 소파에 길게 누워있었다. 미니멀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넓은 거실. 소파 반대편 벽에 걸린 TV에서는 '뿌리깊은 나무'가 방영되고 있었다.
주방홀로 향하는 짧은 벽면에 붙은 시계는 10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관쪽에서 둔탁하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단테는 미동도 없었다.
끼이익.. 헉.. 헉.. 텅..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단테는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았다.
"엄마야? 뭐 무거운 거 들고왔어? 응?"
단테는 일어나서 현관 쪽으로 향했다.
"단테야!!!!!!!!! 단테야!!!!!!!!!!!"
엄마였다. 다급한 외침에 단테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엄마가 현관에서 신발도 벗지 않고 단테를 향해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엄마!!! 엄마!! 무슨 일이야.. 왜..? 왜!!"
"지금!! 헉헉... 헉... 우리 아들.. 헉!!!"
"엄마 뭔데.. 왜... 왜..."
"우리 아들.. 엄마 아빠가 미안해.."
"뭐... 뭐야.. 엄마 무슨 일이야.."
단테의 엄마. 미선의 얼굴엔 절망이 가득했다. 땀으로 범벅된 이마에는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뒤엉켜있었고, 눈물인지 콧물인지가 온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아들 이거 받아... 이거 엄마, 아빠가 그동안 연구했던 결과들이야. 우리 아가.. 우리 아들... 미안해.. 사랑해.."
미선은 단테에게 USB를 손바닥 안으로 꼭 쥐어주었다.
"엄마, 아빠가 우리 단태 많이 사랑해.. 많이 많이.."
미선은 이를 닥닥거리면서 부딪혔다.
"엄마.. 무슨 일이야..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
그때였다.
뜨드드드득!!!!!!! 콰과광쾅쾅!!!!!
현관문이 주변 벽을 뜯어내며 송두리째 뜯겨져 나갔다. 시멘트먼지가 현관문에 가득했다. 놀라서 뒤로 나가 떨어진 미선과 단테는 몸을 겨우 일으켰다. 미선이 단테의 손을 끌고 집 안으로 도망치려는 찰나. 먼지를 뚫고 누군가가 후다닥 집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정신없이 단테의 손을 잡아끌던 미선은 앞을 막아버린 사람의 몸에 머리를 부딪혔다. 균형을 잃은 단테가 겨우 고개를 들자마자 주먹이 단테의 뺨으로 날아들었다. 나무젓가락같은 단테의 몸뚱아리가 붕 날라 소파에 처박혔다. 주먹에 쥐고 있던 USB가 바닥에 떨어져 소파 밑으로 굴러 들어갔다.
도... 도둑?... 사람??
귀를 찢을 것 같은 짝! 하는 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단테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흐릿해진 눈을 제대로 뜨려 노력했다. 놈은 엄마의 뺨을 세차게 내리치고 있었다.
"USB를 내놔라.."
이미 미선은 따귀 한 대에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두 대째 뺨을 날리자 미선은 젤리같이 몸을 가누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USB가 어디에 있는가.."
미선은 말이 없다. 정신을 잃은 것이다.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남자는 미선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남자의 척추 쪽에서 피가 파스스스 뿜어져 나오더니 이곳 저곳에서 뿜어진 피가 운무를 만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않고 몸을 뒤지는 데에 열중했다.
남자는 벌떡 일어났다.
"너가 가지고 있는거냐?"
단테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다리를 크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발바닥과 대리석바닥 사이로 미선의 목이 납작하게 눌려있었다. 단테는 두려움에 잠식되어 엄마의 죽음을 신경쓸 수 없었다. 자기안위의 본능이 사고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거실이 남자가 뿜어낸 피로 시뻘게졌다. 지옥이었다.
"... 끌끌... 몸이 버티질 못하는 군.."
남자는 단테에게로 걸어왔다. 남자의 손이 단테의 상의를 잡아 뜯어버렸다. 마르고 하얀 몸..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핏물이 하얀 몸을 빨갛게 적시고 있었다. 손으로 단테를 더듬거리던 남자는 비죽거리던 웃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참을 단테의 몸 구석구석을 진찰하듯 만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껄껄껄.. 여기서 이런 걸 만날 줄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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