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는 퇴근 시간대의 지옥철에 타고 있었다. 독립문역까지는 세정거장이 남았다. 사람들의 땀냄새가 코를 찔렀고, 지하철이 덜컹댈 때마다 균형을 잃은 사람들이 단테를 밀치기도 했다. 하지만 단테의 얼굴은 평온 그 자체였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심화반 보충수업 시간..  

심화반 수업이 끝나면 10시까지 자습감독. 다시 11시까지 심화반 자습감독..   다시 생각해 봐도.. 한 숨이 절로 나오는 일정이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견뎠을까. 퇴사가 만병통치약이라더니..  지금은 이 모든 게 저절로 아름다워보였다. 선생님이 되고나서 처음으로 맞이한 제대로 된 방학같았다. 복직하면 그 스케쥴을 다시 소화해야 한다니. 토가 나올 것 같았다.

독립문역에서 7시에 홍태규 선생님과 만나기로 했다. 인왕산 국사당에서 굿판이 벌어진다고 하셨다...   가소롭다는 표정이 나도 모르게 지어졌다.

굿판이라...   그런 미적지근한 것을 뭐하러 하는 걸까.. 

달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잖아.

그렇다고 잘 달래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간단히 없애버리면 되는 것을.. 

하긴 자기들이 뭘 알고 굿을 하는 거겠어.. 

그냥 흉내만 내는 거지.

[독립문역. 독립문역에 도착하였습니다. 내리실 곳은 왼쪽입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1번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나오자마자 보이는 후줄근한 차림의 태규쌤. 눈이 마주치자마자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 . . . . . . . . . . . . . . 

두 사람은 아파트단지 옆으로 나 있는 오르막길을 따라 인왕산 자락을 걸어 올라갔다.

"얼굴 오랜 만에 보니 좋네요. 단태쌤."

"네. 저도 그렇습니다."

"사셕에서 둘이 본 건 쳐음이네요."

"네. 그렇.. 네요.."

"어�璿舊�?..허허.. 저도 대학원에서 강의할 때 젊은 사람들 많이 만나보는데, 어울리기 힘들더라고.. 내가 또 셰련되지를 못해서.."

"뭐.. 그렇죠..... "

학교 사람들하고는 도대체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가야 할 지 모르겠다. 방송처럼 하기가 너무 힘들어.

"사실 단태쌤.. 아니지 아니지.. 방송보니까. 단테라고 부르더라고요. 젊은단테.. 되게 머싯는 별명인거 같아요. 의미가 있는 거에요?"

"아 네.. 그게 신곡을 쓴 단테랑 제 이름이랑 어울리더라고요."

"아. 알죠 알죠. 단테의 신곡.."

"네..."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옹벽에 반사되어 아파트 단지로 퍼져나갔다. 국사당이라는 곳이 이런 아파트단지 근처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단태쌤. 헉.. 헉.."

"네."

"나이가 드니까 오르막길을 조금만 올라도 슘이 차네요. 다름이 아니고.. 헉.. 후우...  사실 단태쌤이랑 친해지고 싶었어요... 후.."

"네? 저랑요?"

"네.. 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오해할 수 있겠다. 아 ��수하게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

"아~ 네.."

"근데 방숑에서는 말 신나게 잘하시는데.. 아직 좀 불편하죠? 껄껄.. 헉.헉.."

"아 그건.. 방송이랑.. 현실이랑은 뭔가.. 다르더라고요."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퇴마사 입니다.] 말하는 게 어디 뵤통 강단으로 가능합니까. 전 죽어도 못해요. 껄껄... 하악.. 후우.."

"아... 선생님..  제가 그날은 정신이 좀...."

"아닙니다. 전 아주 감동이었어요..헉..휴우..  뭔가 그 모습을 보면서 짜릿했달까요.. 정말 .. 대단했어요. 허억.. 헉.."

"뭘.. 짜릿까지요.."

"네 TV로 그거 보면서 얼마나 짜릿했다니까요. 헤엑 헥.. 아무튼 앞으로 친하게 지냅시다. 진심.. 진심으로요.."

태규쌤은 단테에게 손을 털털하게 내밀었다. 

"아 네.. 뭐.. "

단테는 태규쌤의 악수에 응했다. 아주 조금 쑥쓰러운 마음으로..   생소했다. 나이 든 남자가 진심으로 친해지자고 말하며 손을 내밀다니.. 이유가 뭘까. 아마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해서 그렇겠지..

바로 앞에는 소박한 크기의 일주문이 서 있었다. 현판에는 '仁王山 仁王寺（인왕산 인왕사）'라고 적혀있었다. 국사당은 인왕산 인왕사（仁王寺） 안에 있는 사당이었다. 둘은 일주문을 통과했다. 걸음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진 것도 같았다.

. . . . . . . . . . . . . . . 

다닥다닥 들어선 집들이 모두 절이었다. 이곳은 절들이 모인 마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윗자리에 국사당이 있었다.

국사당 주변은 굿 준비로 한창이었다. 단테는 사당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쭈볏거리며 있었다. 태규쌤이 국사당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태규쌤 주변으로 모여들며 환대하였다. 단순한 반가움의 표시보다는 존경의 느낌이 담겨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으쓱해졌다. 

모두가 들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며 일사불란하게 먹을 거리를 만들어 날랐다. 굿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마을 잔치같았다. 어릴 때 보았던 굿과는 분명히 달랐다. 

밤에 하기 때문인지 모든게 조용히 이루어졌다. 커다란 횃불이 필요한 곳마다 세워지며 톳톳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주변이 온통 불빛을 받아 노래졌다. 뭔가 커다란 해가 된 것 같았다.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북소리가 들려오다가 멈추었다. 

보살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나무그릇에 음식 몇 개를 담아 건내주셨다.

"태규어르신을 따라오셨죠? 오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이거 좀 드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럼 천천히 드세요."

"넵!"

"실제로 보니 영광이에요.."

"예?"

아주머니는 바쁘게 돌아가셨다.

태규어르신? 태규쌤이 높으신 대접을 받으시네..  

근데.. 영광이라니.. 

단테는 접시에 있던 편육을 한 쪽으로 치우고 산적으로 보이는 것을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깨작거렸다. 음.. 입에 맞지 않았다..

'태규쌤은 어딜 가신거지.. '

단테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국사당 바로 아래 세워진 안내문을 들여다 보았다.

[인왕산 국사당]

이 사당은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남산을 신격화한 목멱대왕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국사당은 원래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사람들이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1925년 지금 위치로 옮겨 지었다...... 국사당을 무대로 내림굿, 치병굿, 재수굿 같은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야.. 진짜 일본 얘네들은 남의 나라에서 별 짓을 다했어 진짜..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려 뒤로 돌았다. 그제서야 서울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기분이 묘했다. 서울 한가운데 있는 제당이라...  과학으로 빚어진 경치가 바로 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이 왠지 아이러니했다. 

더 위로는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이 모든 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듯한 모양의 바위였다.

고개를 내린 그때였다.. 

한 아이가 단테의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생? 1학년.. 2학년..?  그 아이는 라이터를 틱틱 거리며 종이조각에 불을 붙이려 했다. 말려야 겠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연유가 있겠지..  그저 신기하기도 한 마음으로 계속 바라보았다.

불이 붙은 종이조각들은 마치 깃털이라도 된 듯 아이의 주변을 떠다니며 돌기 시작했다. 마치 TV에서 봤던 카드마술을 보는 느낌이었다. 

카드마술 속 허공을 빙그르르 도는 카드처럼 아이 주변으로 작은 종이조각들이 원을 그리며 타올랐다. 타다 만 종이가 검게 그을려 바닥에 떨어질 법도 한데..  그런 것도 없이 모두 재가 되어 마지막까지 불꽃을 냈다. 아이는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 주변에서 회오리바람이 불었는지 아이의 머리가 휘날렸다. 신기했던 마음이 조금 수그러 들었다.

단테는 몸을 비틀며 고개를 돌려 등 뒤로 펼쳐진 도시의 야경을 한번 더 바라보았다. 산풍이 고고하게 불어와 더운 밤을 달래주었다.

"아~ 깜짝이야~~!!!"

아이가 바로 단테 눈 앞까지 와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단테를 바라보았다.

"나 형 TV에서 봤는데.... 신기하네... "

아무렇지 않은 듯 아이에게 대꾸했다.

"아..  그랬니? 형 TV에서 봤어?"

"시귀（屍鬼） 죽이는 거 영상도 찾아봤어요."

"... 뭐? ... "

"여기 모인 사람들 다 형 팬이에요."

"엥?"

"단테형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다들 모이면 단테형 이야기하느라 정신없어요."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흘끔흘끔 쳐다보았는데...  근데.. 내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넌 이름이 뭐니?"

"전 태제에요. 고태제."

"고태제.. 반갑다. 나는 김단태라고 해.."

단테가 손을 내밀자 태제는 작은 주먹을 쥐어 내었다. 단테도 주먹을 쥐어서 가볍게 태제의 주먹에 가져다 톡하고 쳤다. 아이는 국사당 뒤편으로 쪼르르 뛰어가버렸다.

태제.. 태제.. 이름 겁나 멋있네..

아이가 사라져간 국사당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국사당의 옆문이 열리더니 태규쌤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 안에 들어가 계시느라 그렇게 안보였구나.

"단태�� 미안해요.. 혼자 오래 두게 했네.."

"아니에요. 선생님..  분위기도 신나고 너무 즐거워요."

"아.. 갑자기 북을 쳐달라고 해서... "

태규쌤은 한복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선생님. 북도 치실 줄 아세요?"

"아. 흉내만 조금 내요. 밤에 하는 거라 필요할 때만 한 번씩 쳐달라고 해셔.. 단태��이랑 같이 얘기 좀 나누고 싶었는데.. 이따 굿 다 끝나면 막걸리 한잔 해요.."

"네 선생님. 저 신경쓰지 마시고.. 잘 하고 오세요."

"아이구 그래요. 또 다녀 올께요~!! 이제 바로 시작할 겁니다."

"네네~~!!!"

태규쌤의 모습에 평소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한복을 두둑이 챙겨입은 모습에서 기운 쎈 풍채가 느껴졌다. 

국사당의 문이 활짝 열렸다.

곱게 신복을 차려입은 여인이 초연히 국사당 안에서 나와 오롯이 달빛을 받고 있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단테는 귀 뒤쪽으로 뭔가 저릿하는 게 느껴졌다.

북소리가 자근자근거리며 조용히 이어졌다. 태규쌤의 근엄하고도 진지한 얼굴이 단테의 눈에 각인되어 들어왔다. 

난데없는 도약. 신복이 커다랗게 나폴거렸다. 땅바닥을 크게 밟더니 좁은 보폭으로 이리저리 밟아나갔다. 입으로는 조용하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읍조렸다.

단테는 의미도 모르고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의미가 무슨 상관.. 그저 무당의 춤사위가 뿜어내는 위력에 숨이 멎을 듯했다. 

무당이 조용히 읍조리던 소리가 갑자기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음절 하나하나가 그대로 단테의 귀에 박혔다. 목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여기여기여기 표란할미가 왔습니다. 

모습 다른 다섯 신께 백, 적, 흑, 황, 청.

오방색으로 물을 들여 잘 지은 옷을 드리나니.

이곳 대지 곳곳에 오곡 백과 씨를 뿌려 주십시오.

남산에서 뜯어날라 잘 모시고 있사오니.

그 씨들 모두 좋은 수확으로 오게 해주소서어어.

대풍이 들게 해 주소서어어.

....

단테는 고개를 흔들어 묘한 음성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깨웠다.

그저 사람을 홀릴 뿐이다. 쓸데없는 짓이야... 어차피 이 굿은 인간들을 위한 것이다. 저들이 믿는 신은 영혼일테고..   어차피 영혼은 인간이었던 것들인데 어떻게 저렇게 초월적인 존재로 만들어 믿으려는 거지..  사람을 현혹시켜 돈을 버는 사람들일 뿐이야..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갑자기 북소리가 멈추었다... 정적.. 사람들의 눈길이 단테를 향했다. 무당의 눈이 단테를 향한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당은 단테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단테는 움직일 수 없었다. 손을 뻗는 무당을 제지할 수 없었다. 무당의 손은 빠르게 단테의 심장을 쥐었다. 심장에 터질 것 같은 압력이 느껴졌다. 

단테의 두 눈에서 갑작스럽게 눈물이 주루룩.. 흘러나왔다..

하염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