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연애가 끝날 때 느꼈던 기분.4

잘 사귀고 있었어요.

알바하다 알게 되었고,

그 친구는 애인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짝사랑하고 있었어요.

가을에 알바를 그만두고, 겨울에 술마시다 저도 모르게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나봐요.

다음날이면 통화내역에 찍혀있고...

무슨소리를 했는지 기억이 안나니 무서워서 가만 있고...

그게 서너번 그랬나봐요 제가.

짝사랑만 반년 쯤 했던 것 같아요.

중간고사기간 즈음해서 그 친구에게 연락이 오더라구요.

자기 과제 준비하는데 준비물이 내 전공과 관련된거 같아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냐고....

내용 들어보니 저랑 거의 관계없는 내용이었는데, 친한 조교들 타과 친구들 여기저기 물어서 발품팔아서

도와줬어요.

그래서 그렇게 일방적으로 술먹고 전화하던 서먹한 사이에서,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가 됐어요.

사귀던 애인과는 헤어진지 몇달 됐다고, 오빠가 술먹고 몇 번 전화한 이야길 친구들에게 했는데 그래서 연락하게 됐다고...

그 친구들 참 고마운 친구들인데 보답을 못했네요.

그 때가 시험기간이라 카톡 몇마디 하다 공부한다고 잠깐 폰을 치울 때마다 정말 그 유혹 참기가 힘들었는데,

그게 멋있었더래요. 해야할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그렇게 연락하고 지내다 내 생일에 그 친구가 케이크를 사들고 찾아왔었어요.

하이힐에,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에, 활짝 웃으며 걸어오는데.....

알바 그만둔 이후로 반년하고도 몇개월이 훌쩍 지나고 처음 마주한건데, 얼마나 이뻤는지...

점심 사주고 돌아가는 길을 바래다 주려고 나왔는데 비가 내리더라구요.

미리 준비했던 우산을 펼쳤는데, 그 친구도 우산을 꺼내더라구요.

그리고 내 우산을 보더니 접으라- 해서 접었어요. 그 모습에 더 반했나봐요.

바보같이 손도 못잡고 그냥 그렇게 둘이서 한쪽 어깨 적셔가며 걸었어요. 그게 그렇게 좋았네요.

23살 내 생일 선물은 그 친구와 걸었던 그 빗길이었어요.

그 이후로 더 빨리 가까워져서, 그 친구 학교 뒷편 작은 카페에서 만나서 사귀게 됐어요.

그러고서 잘 만났는데....

제가 취직하고나서부터 점점 오만해졌나봐요. 어린나이에 적지않은 페이로 자리잡고나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나봐요.

넌 나중에 어디로 취직할거냐, 그 전공해서 취직하기 힘들텐데, 해봤자 얼마 못벌텐데.

어줍잖은 오지랍과 거만함으로 우리 애정에 내가 찬물을 끼얹었어요.

많이 상처받았을 거에요. 한달만 생각해보자-는 그 친구 말에, 그러지 말자고 미안하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래, 그러자- 했던게 지금도 제 뺨을 후려치는 깊은 후회로 남아있어요.

한달 후 다시 만나서 웃으며 만나서, 그 동안 못봐서 너무 외로웠다고, 너무 보고 싶었다고,

손을 잡았는데,

손을 마주잡는게 아니라,

내가 그 친구 손을 붙잡는 느낌이었어요.

밥먹으러 가는 짧은 10분동안, 내가 붙잡고 있었어요.

그 때 이미 알았을텐데, 괜히 말하면 그게 더 빨라질까봐 겁나서,

말 못했어요.

초밥집에 가서 마주앉았는데,

늘 날 보고 웃어주던 친구였는데,

메뉴판을 보고 삼초만에 고르더라구요.

그게 마지막 커플세트메뉴였어요.

먹으면서 그친구가, 울면서, 그만 만나자- 하는데,

나도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지금 여기서 나도 같이 울어버리면 그 친구가 너무 미안해할까봐,

잘못한건 난데.

한달동안 많이 생각해보고 한 말일거란 생각이 들어서, 잡지 못하겠다- 고, 보내줬어요.

대신 우리 나쁘게 싸워서 헤어지는거 아니니까 가끔 생맥주 한 잔씩은 괜찮지 않겠냐- 며 태연하게 말했는데,

마른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느라 그 한마디가 참 힘들었네요.

돌아가는 차편을 바래다 주는데, 그 친구 등을 바라보다, 떠나는 모습을 보고나니까

그제서야 나도 눈물이 흐르더라구요.

시내라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많이 울었어요.

그게 마지막 뒷모습이었어요.

이별할 때의 슬픔이 너무 깊었어요. 사랑할 때의 행복이 너무 컸나봐요.  그 때의 내 실수를 지금도 후회합니다.

수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생각이 많이 납니다.

참 찌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