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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 더위가 가실 무렵 종종 같이 산행을 하는 죽마고우와 등산 약속을 잡았는데 추석을 쇠고 나니 바로 닥쳤습니다. 열흘 전 이화령~조령산~신선암봉~조령3관문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코스로 낙점을 하고 금요일 퇴근 후 집을 나서서 이화령에서 비박을 하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했습니다. 조령산 후기를 보면 백두대간 중 최고의 험지로 명성이 자자했기에 오래전부터 망설이던 차(사실 저는 괜찮은데 늘 동행인이 기겁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에 최근 후기를 보면 극악의 코스에 나무 계단이 생겨서 수월해졌다는 얘기들이 많아 안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기 전까지는 모른다 했던가요. 나무 계단은 일부일 뿐, 1~2km 정도의 암릉 구간은 5일전 다녀왔던 속리산의 서북능선보다 더 험한 최고 난이도였습니다. 신선암봉 이 후로는 절대 아이들을 데리고 갈 코스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후기들이 이런 위험한 암릉 구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누락한 경우가 많아(아마도 정신없이 통과하느라 사진 같은 걸 찍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난이도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간 셈이 됐습니다. 저는 크게 상관이 없었는데 최근 운동 부족과 요요현상으로 급격히 살을 찌운 친구 녀석에게는 이 암릉 구간이 큰 고행길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후기에서 이 암릉길에 대해 조금이나마 보태 보고자 합니다.
백두대간 이화령, 해발 548m. 경북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입니다. 일제 때인 1925년에 단절되었다가 2012년에 복원하여 다시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이 곳은 4년 반 전에 다른 친구와 함께 구미~수안보 142km 자전거 라이딩을 하면서 자전거로 처음 지나쳤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화령에서 조령산까지는 평이하게 올라가며 산행 방향은 북진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동쪽으로 약간 기운 북북동향입니다. 1~1.2km 정도는 능선길과 능선 바로 아래 사면길로 나뉘다가 다시 합쳐집니다. 사면길로 들어섰는데 완만하게 올라가지만 너덜길을 만들어내는 암석 계곡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아 만만치 않겠다 싶었습니다. 조령샘을 지나 잣나무 숲에 이르렀을 무렵 나무 계단이 보이기 시작하고 급격히 올라가다 정상을 앞두고는 다시 완만해집니다. 조령산 정상(1017m)에 올라서야 비로소 나무틈으로 나무위로 조망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동쪽의 문경새재, 남쪽으로 뻗은 백두대간 황학산, 희양산이 보입니다. 정상석 동쪽으로 1999년 안나푸르나에서 하산하다 사망한 지현옥의 추모비목이 세워져 있습니다.
조령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가슴이 탁 트이는 조망지가 나옵니다. 기암절벽의 봉우리들, 신선암봉과 그 능선, 주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시원합니다. 가운데 맨 뒤로 보이는 바위산은 바로 월악산입니다. 좌측의 중봉과 오른쪽에 우뚝 솟은 영봉이 선명히 보입니다.
조령산의 북쪽면 하산길은 매우 가파릅니다. 조령산 정상에서 0.38km 정도 북쪽으로 내려오면 마당바위로 갈 수 있는 3거리가 나오는데 경고 팻말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조령3관문까지 힘든 구간이므로 체력이 약한 사람은 마당바위로 하산하라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신선암봉을 향해 갔습니다. 잠시 올랐다가 다시 가파르게 내려가는데 나무 계단이 새 것인 게 생긴지 얼마 안된 모양입니다. 실제로 나무 계단이 없었다고 한다면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진행 방향.
뒤돌아 본 조령산.
곳곳에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즐비합니다.
진행 방향의 우측 뒤. 2년 전 부모님과 덕유산 종주를 했을 때 이른 아침 남덕유산의 근육질 능선이 생각나는 모습이었습니다.
밧줄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데 아직까지는 별 게 없고 이제 신선암봉 목전(좌측 봉우리)입니다.
뒤돌아 본 조령산.
진행 방향의 왼쪽 및 뒤편. 연풍면과 칠보산.
신선암봉과 우측의 봉우리 사이 뒤편에 월악산 영봉이 보이고 우측의 주흘산 능선.
뒤돌아 본 조령산.
신선암봉 바로 밑에서 본 풍경.
바위 위에 올라서서 바라봅니다.
거대한 바위가 마치 벽을 세운 듯이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습니다. 길이 가로 막힌 듯 보이지만 직진, 우회전, 좌회전해서 지날 수 있게 바위 사이길이 직각으로 나 있습니다.
그렇게 바위 사이길로 들어가서 마지막 좌회전을 하면 바로 이렇게 타원형의 거대한 바위 덩어리 능선길이 나옵니다. 독특하게도 바위 한 복판에 자란 소나무에 줄이 매달려 있습니다. 좌우 끄트머리로 가면 낭떠러지지만 바위 자체가 크니 위협적이지는 않고 줄도 필요 없어 보입니다.
그 바위에서 뒤돌아 보면 이렇게 뜬금없이 서 있는 바위벽이 보이고 그 뒤로 지나 온 조령산이 보입니다.
처음으로 줄이 반드시 필요해 보이는 구간으로 기억됩니다. 줄잡고 수직으로 오르는데 이 곳을 오르면 바로 신선암봉 정상입니다. 이 줄은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의 예고편이었습니다.
줄 잡고 올라서 본 뒷 모습.
신선암봉 전경
신선암봉에서 본 조령산.
신선암봉 북쪽 뒤로 다시 내려갔다가 다시 봉우리를 올라야 합니다. 조령산 쪽에서 봤을 때 신선암봉의 우측 봉우리가 이렇게 바로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 능선을 넘어 조령 2관문쪽으로 가면 우측의 주흘산 능선을 타게 됩니다. 좌측 끄트머리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월악산 영봉입니다.
가야 할 능선길.
신선암봉에서 내려온 후 뒤돌아 바라 본 신선암봉. 신선암봉에서는 계단으로 내려왔는데 이 계단이 올 봄엔가 생겼다고 하는데 그나마 힘든 구간을 수월하게 내려왔습니다.
조령산과 이어진 신선암봉.
주흘산 능선.
연풍면 방면. 구름과 하늘이 환상적입니다.
조령산과 이어진 신선암봉.
연풍면, 칠보산 방면
멋진 소나무들이 기막힌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풍경에 심취해 있다가 이제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험로입니다. 앞에 보이는 바위를 거의 직각으로 줄하나 잡고 올라 가야하는데 저길 가기 위해서는 아래 사진과 같이 우측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야 합니다. 우측의 내려가는 길도 후덜덜 합니다. 그나마 발판이 박혀 있어 괜찮습니다만 매우 조심해야 하고 겁도 나긴 합니다. 몸을 바위쪽으로 해서 살살 내려가다보니 옷이 바위에 긁히기도 합니다.
줄잡고 암벽 타기.
줄잡고 올라서서 뒤를 보고 찍은 사진. 사진의 좌측 뒤편이 줄잡고 발판 밟으며 내려서는 길이고 좌측 바위 하단으로 와서 줄잡고 올라와야 합니다. 줄잡고 올라타면 아래와 같은 위치가 됩니다. 친구의 왼편에 있는 나무에 줄이 묶여 있고 수직 아래로 늘어져 있습니다. 위에서 보면 아찔해요.
험난한 암릉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 여지없이 멋진 조망을 보여줍니다. 주흘산 능선
줄타기는 계속 됩니다. 친구는 이제 혀를 내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무 계단이 생겨서 험지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면서 암릉 구간은 생각치 못했답니다.
맨 왼쪽 뒤편의 월악산 중봉, 영봉. 오른쪽 사자바위를 필두로 한 주흘산 능선
그 날 산행로를 통틀어 가장 어려웠던 구간. 완전 수직 바위벽에 줄 하나 매달려 있는데 손으로 잡을 곳도 발을 디딜 곳도 없이 매끈한 바위벽입니다. 줄을 탈 때는 웬만하면 몸을 뒤로 젖히지 않고 바위를 잡으며 줄을 잡고 오르곤 했는데 이번만은 팔힘 하나만으로 올라야 하기에 아찔하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을 뒤로 젖히며 그야말로 줄을 잡아당기며 겨우 올랐습니다.
오르고 나서 위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으론 실감이 안나는데 아주 아찔아찔 합니다. 친구가 이곳에 이르러 이 길을 봤을 때 넋이 나간 표정으로 도저히 못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회로가 있었으니 사진의 좌상단쪽, 즉 진행방향으로 보면 우측에 커다란 바위 덩어리들이 있는데 이 곳으로 오면 발을 겨우 디디며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우회로로 유도를 해 주었습니다. 올라서서 보니 참 아쉬운 것이 리본을 나무 곳곳에 매달아 자신의 족적을 남기는 사람들은 왜 이 바로 옆 우회로에는 표식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절벽에 줄 하나 덩그러니 있는 곳 위에 리본을 매달아 두었더군요. 웬만큼 등산 경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곳을 줄 잡고 오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 숨을 고르고 조금 더 가니 또 절벽에 줄 하나 매달려 있습니다. 하하.
먼저 오른 후 내려다 본 친구의 절망적인 표정. 또야 하는 소리를 절로 내뱉고 있습니다.
줄잡고 오르면 언제나 경관 하나는 기가 막힙니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도 멋집니다.
저는 풍경에 도취된 반면 친구는 체력이 고갈되고 다리 통증(절벽을 오르느라 근육이 좀 놀란 것같음) 이 생겨 넋이 나갈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 줄.
줄 잡고 오른 후 내려다 본 모습.
월악산이 더 가깝게 보입니다.
조령 제3관문에 도착해서 조령산 휴양림으로 하산했습니다. 산행 중 딱 만난 사람은 신선암봉을 지나서 딱 한사람이었는데 자일을 찬 것으로 보아 암벽등반가인 모양입니다. 연풍택시를 불러 이화령까지 원점 회귀했습니다. 지역의 택시기사들 중 나이 지긋하신 토박이들을 종종 만나는데 좋은 것이 그 지역의 여러 가지 문화, 역사를 소개해 주십니다. 돌아오는 길에 괴산 연풍면 원풍리의 쌍마애불상을 보고 가라며 잠시 세워주시기도 했습니다.
이화령에서 조령 3관문까지의 백두대간 이동거리는 10.1km, 조령산 휴양림 입구까지 총 12km의 산행이었습니다. 이동거리가 그렇게 길지 않아 산행을 마쳤을 때는 꽤 가뿐한 기분이었습니다만 친구는 일생에서 최고로 힘든 산행이었다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탈탈 털렸다고 말했습니다. 몸을 회복하고 살을 좀 뺀 다음에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이화령에 도착하니 자전거 라이더들 많이 있었고 어느 산악회에서 온 듯한 10여명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전세낸 듯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깔깔대며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음료수 한 잔 들이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2018-09-29.
* 덧붙이는 말 : 힘들어서 못올리겠네요. 사진 사이즈가 제 멋대로 올라가고 가로 세로 비율도 자동으로 틀어지고... 뽐뿌 에디터로는 쓰기가 참 버겁네요... 어쨌든 숙제를 마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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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충동구ㅁH
또 가보고 싶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