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글]
네팔 랑탕, 고사인쿤드, 헬람부 트레킹 1/4(모바일주의)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climb&no=79090&ismobile
네팔 랑탕, 고사인쿤드, 헬람부 트레킹 2/4(모바일주의)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climb&no=79146&ismobile
네팔 랑탕, 고사인쿤드, 헬람부 트레킹 3/4(모바일주의)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climb&no=79216&ismobile
네팔 랑탕, 고사인쿤드, 헬람부 트레킹 4/4(모바일주의)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climb&no=79320&ismobile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푼힐전망대 트레킹 1/3(모바일주의)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climb&no=79575&ismobile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푼힐전망대 트레킹 2/3(모바일주의)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climb&no=79631&ismobile
다소 긴 글과 사진들이므로 해외트레킹에 관심 없으시거나 긴글 읽는 걸 싫어하시는 분이시면 가볍게 패스해 주세요.^^
그럼 시이자악~
전날 베이스캠프에서의 강한 여운은 하루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음을 고요하게 진동시키며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하나씩 쏟아내고는 또다시 그 풍경 속으로 저를 이끕니다.
같은 곳에 서 있지도 않고, 눈에 비치는 모습도 다르지만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한 장면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만들어내는 이 소용돌이는 서서히 커져서 마치 거친 격랑속의 작은 돗단배처럼 스스로를 주체할수 없게 만듭니다.
어쩌면 이 작지만 소중한 경험들이 제가 살아오면서 그토록 찾고 싶었던 것에 한발자국씩 다가서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금도 여느 산에서 아침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볼때면 늘 이때를 회상하면서 그곳으로 향했던 자신의 발걸음을 되짚으며 작은 미소를 짓곤 합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의 기억들을 새 자루에 또다시 담기 위해 잠시 망각의 주문을 걸고는 오늘은 또 어떤 모험들이 저를 즐겁게 해줄까 하는 기대감으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어제는 어제의 태양이 떠올랐듯이, 오늘은 오늘의 새로운 태양이 떠오릅니다.
붉게 빛나는 풍요의 여신이 기지개를 켜면서 저만치 아래의 세상 만물을 그 품에 안기 시작합니다.
마차푸차레(Machapuchare)도 단잠을 깨고 일어납니다.
이른 아침 촘롱의 풍경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위에 보이는 건 신의 모습을 닮은 봉우리들과 하얀 눈 뿐이었는데 불과 하루거리로 떨어져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떨어진 느낌마저 줍니다.
게다가 반팔셔츠를 입고 있음에도 저 멀리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칠때마다 차갑다라기보다는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롯지아지매가 만들어주신 마차푸차레표 볶음밥.
맛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 있는 그런 맛입니다.
Jhinu danda HotSpring
온천욕을 즐기신다면 이쪽으로 내려가 잠시 들르세요~
저는 올라오면서 이미 몸을 담궈 보았기에 가볍게 패스합니다.
타다빠니로 향하는 작은 길이 산허리를 따라 나지막한 경사를 이루며 어디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너무 급하지도, 평평하지도 않은, 이런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길을 걷는 걸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평지는 너무 심심하면서 재미없고, 급경사는 지나치게 힘들고 지치게 만들지만, 이렇게 완만한 경사에서는 몸에 적당한 긴장감도 주면서 땀도 좀 맺히고...
앞으로 살아갈 삶도 딱 요정도의 오르막길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한무리의 트레커들이 조금전 제가 지나왔던 길을 걸으며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습니다.
혼자 다니다보니 가끔씩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뭔가 허전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롯지에서 뭔가 주문할때를 제외하고 말을 거의 안하는데 한국어로는 말할 기회가 아예 없습니다.
그래서 조용하고 호젓한 길을 걸을때면 일부러 평소 좋아했던 노래들을 자주 흥얼거리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
같은 길을 걸을지라도 어제의 길과 오늘의 길이,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다르듯이, 발아래 놓인 이 작은 길을 따라가다보면 오늘이라는 시간이 제게 어떤 선물을 안겨줄지 기대하게 만듭니다.
커다란 바위들이 어디선가 굴러와서 원래의 자기자리인 마냥 어색하지 않게 놓여있습니다.
아마도 산사태의 흔적이겠죠.
타다빠니로 잘 가고 있습니다.
산사태의 흔적은 길을 걷다보면 이곳 저곳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우기때의 집중호우로 인해 산사태가 자주 일어나는데 길이나 도로가 막히는 건 어느정도 불편을 감수하면 되는 일이지만... 마을이나 주요시설을 덮치는 경우도 있어 여름에 깊은 계곡 트레킹을 할때는 꼭 주의해야겠죠.
하물며 최악의 지진도 몇해 전에 이 땅을 휩쓸고 지나갔으니...
지금은 그 모습들이 예전과 사뭇 다를수도 있겠군요...
[당시의 다이어리에서 발췌]
멍청히 앉아 잡생각을 하는데 할머니 한분이 한국인이냐고 물어보신다.
Yes라는 말에 한시간여 그분이랑 노가리를 깐거같다.
연세대유학생 1호였다고 하시던데 일본에 유학간 후 40년간이나 사셨단다.
물론 지금도 자녀분이랑 삶의 기반은 모두 일본에 있다고 하신다.
산을 좋아하셔서 일본에 있는 3,000개가 넘는 산을 오르셨단다.
게다가 여행한 나라들이 무려 120개국...할말을 잃었다...
네팔도 20여년전에 오셨다는데 랄리구라스가 너무 보고싶어 일정에 없었던 네팔에 들르셨단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일주 중이시란다...
대부분의 나라에 한달가량 머물면서...
1년이나 그 이상 지난후에 일본으로 돌아가신다는데 그저 대단하다고 느낄뿐...
나와는 삶의 무게가 다른 것 같다.
62세에 가이드도 포터도 없이 혼자서 이러한 고산지대를 다니신다.
난 62살 정도에 뭘하고 있을까?
생각하기 싫다.
그때까지 숨이나 제대로 쉬고 있을까? 하하
오늘하루 여기 머무신다는데 말동무가 되드리고 싶지만... 아...
아마도 그 큰 롯지에 혼자 머무실듯하다.
혼자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그 혼자임에 너무도 당당한 그분의 모습을 보니 멋있고 아름다운 삶을 사신다.
중략......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좋은 곳 많이 다니세요...
아마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 세상 속 어딘가를 그렇게 아름답게 걷고 계시겠죠?
간간히 보이던 랄리구라스도 이제는 길 양옆으로 활짝 꽃을 피우며 하늘과 땅을 빨갛게 물들입니다.
타다빠니에 도착할 즈음부터는 역시나 날은 흐려지고, 어차피 오늘내에 고라빠니까지는 못갈거 같아 그냥 이곳에 머무르기로 합니다.
요 며칠간 제대로 말리지 못했던 양말과 팬티를 방문앞 난간의 줄에 걸어두고는 침대에 널부러집니다.
밖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데다 어디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고해서 그냥 일찍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만개한 랄리구라스 뒤로 안나푸르나사우스(AnnapurnaSouth)와 히운출리(HiunChuli)가 저 멀리 하얗게 반짝입니다.
어제의 비 덕분에 이른 아침의 세상은 원래의 제 색에 비해 더욱 풍부한 빛을 띱니다.
한참을 그렇게 고요한 아침속에 젖어있다 방으로 돌아왔는데 뭔가 허전합니다.
아뿔사...
방 앞 난간에 걸어뒀던 양말 두켤레가 온데간데 없고 축 늘어진 빤스만 덩그러니 걸려있습니다.
7켤레의 양말을 가져와서 그럭저럭 대처는 가능하지만 아끼던 울양말들이라 아침부터 기분이 안좋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필요한 사람이 잘 쓰길 바랄뿐...
여행 중 느슨해졌던 스스로를 한번 더 조이는 계기로 만든 값 치고는 그나마 싸게 먹혔다 생각하며 그냥 쿨하게 잊습니다.
랄리구라스꽃도 본래의 색보다 한층 진해져 파란하늘과 그 원색의 자웅을 겨룹니다.
한동안 머물렀던 랑탕지역도 이제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으므로 이처럼 그 붉은 빛으로 산을, 길을, 세상을 물들이고 있겠죠.
무심코 쳐다본 하늘에도 수많은 붉은 별들이 파란 하늘을 수놓고 있습니다.
돗자리를 펴 놓고 가만히 하늘만 하루종일 바라봐도 한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곁에 같이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죠.
한참 고도를 높이고 있는 태양이 안나푸르나사우스(AnnapurnaSouth)를 더욱 새하얗게 빛냅니다.
이름모를 작은 야생화도 자신만의 색과 모양으로 랄리구라스에 뒤질세라 그 가치를 뽐냅니다.
가을날 붉게 물든 단풍처럼 오늘 가야할 길 위를 랄리구라스가 곱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상쾌하고, 길도 나지막하고, 하늘도 파랗고, 꽃도 이쁘고...
더이상 바랄게 없는 하루가 흘러갑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네 산에서 이른 봄의 진달래나 철쭉 군락지와 닮아있기도 합니다.
바래봉, 연화봉, 국망봉, 촛대봉...
참 그리운 곳들입니다.
나도 있다! 라고 외치는 보랏빛야생화도 곱게곱게 이 아름다운 길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치 새신부의 손에 들린 부케같이 소담하고 예쁘게 피어있네요.
Birth/Dying 이라는 글을 봐서는 짧은 생을 살다 신들의 품으로 돌아간 아이의 무덤 같습니다.
오후시간대로 접어드니 아니나다를까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이젠 그려러니 할 정도로 매일 반복되는 날씨변화에 익숙해졌지만 한편으론 딱 하루의 반만큼만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 히말라아의 신들이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몰려오는 구름은 산허리를 휘감으며 이내 시야를 가리기 시작합니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회색빛 작은 물방울들이 하늘과 산을 색칠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랄리구라스는 그 붉음을 마지막 위안삼아 제게 선물합니다.
언덕배기에 있던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바람을 잠시 피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이 회색물감은 더이상 세상을 칠하지 못한 채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합니다.
날이 완전히 개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하늘은 연회색 구름들이 메우고 있습니다.
간드룽으로 빠지는 길입니다.
지도상에는 없는데 타다빠니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내려가는 길인것 같습니다.
고라빠니 다와갈 즈음 갑자기 천둥번개가 사람 깜짝 놀래키더니 좁쌀만한 우박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잠시동안 함께 걷고있던 현지인은 늘상 일어나는 일인마냥 아무렇지않게 제게 미소마저 지으며 어서 서두르라는 몸짓을 합니다.
비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그래도 방수잠바와 오버바지를 꺼내 배낭에 매달고서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마을에 도착한 후 푼힐전망대입구와 가장 가까운 언덕에 있던 롯지에 짐을 풀고 오랜만에 따뜻한 온수에 샤워를 합니다.
우박때문에 조금은 긴장한 채 달려오느라 뻐근해졌던 몸이 한껏 달궈진 후라이팬 위 버터처럼 샤르륵 녹아내리며 달달한 천국을 잠시 맛봅니다.
이 지역 트레킹 일정 중 두번째 종착지(첫번째는 베이스캠프)인 고라빠니에 도착했다는 작은 성취감과 내일아침 푼힐에서의 아름다운 일출을 기대하며 랄리구라스로 붉게붉게 물들어가는 산중의 작은 오솔길을 따라 꿈나라로 걸어갑니다.
일출을 보기위해 새벽일찍 일어났는데 창 밖에는 벌써부터 헤드랜턴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해가 있는 낮 동안은 그리 추위를 느끼지 못하지만 해가 없는 밤 동안은 초겨울 추위이기에 오랜만에 동계장갑과 고어잠바로 무장하고 컴컴한 롯지문을 열고선 푼힐 정망대로 향합니다.
참고로 푼힐(PoonHill)이라는 지명은 이곳에 모여 살았던 소수민족인 푼족(Poon People)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아직 전망대에는 아침볕이 들지 않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다울라기리(Dhaulagiri 8172m)가 붉은 황금처럼 빛나며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울라기리(Dhaulagiri 8172m)는 산스크리트어로 '하얀산'을 뜻하며 깔리깐다끼 계곡 서쪽에 자리하며 제1봉(8,172m), 제2봉(7,751m), 제3봉(7,703m), 제4봉(7,639m), 제5봉(7,585m)의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직 동쪽에는 새벽의 여명만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지만...
이내 수줍은 듯 살며시 고개를 내밀며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모든 날에 떠올랐던, 지금 이순간 떠오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의 무수한 날에도 떠오를, 이 붉게 타오르는 가장 거대한 별을 바라보며 생에 대한 감사함을 신들에게 전합니다.
그리고 오늘 새롭게 시작되는 이 하루가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바랬던 하루임을 다시한번 마음 속 깊이 상기합니다.
다울라기리(Dhaulagiri 8172m)에 깃든 '하얀신'은 이내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며 그 옆의 형제들도 깨우기 시작합니다.
다섯 신이 모두 하루동안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아침볕은 아래로 아래로 향하며 작은 산들과 언덕, 그리고 거기에 깃든 모든 생명들에게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전망대에 삼삼오오 모여서 이 멋진 풍경을 눈에 담고 있습니다.
'하얀신'에 이어 '풍요의 여신'도 붉게 타오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만일 금전적으로 여유가 된다면 경비행기를 타고 일출을 감상할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역시 발포매트 철푸덕 깔고앉아 서서히 변해가는 빛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는 풍경과 조용히 마주하는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북적이던 전망대는 이내 텅 비어버리고 그 여운의 끝을 붙잡고 있는 저만 덩그러니 남았네요.
일출때의 그 붉은 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지만 순백으로 또다시 물들어가는 모습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하는 높은 전망대도 있지만 워낙 시야가 트여있는 곳이라 굳이 안올라가도 됩니다.
일출시에는 전망대도 좁고 너무 복잡해서 차라리 아래에서 보는게 훨씬 더 낫습니다.
룽다와 타르쵸가 모두 떠나간 텅빈 자리에서 무심한듯 바람에 나부낍니다.
롯지로 돌아와 아침을 먹으면서 오늘의 일정을 정리해 봅니다.
이곳을 떠나 하루 정도 내려가면 이번 트레킹의 최종 종착지인 나야풀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미 이전의 일정동안 충분히 즐거웠고 만족하기에 큰 미련은 없지만...이 가느다랗게 이어진 마음의 여운은 언제나 그렇듯 제 발길을 머뭇거리게 합니다.
하지만...
사나이 앞길엔 직진!이겠죠!
저멀리 안나푸르나사우스(AnnapurnaSouth)가 하얀 손을 흔들며 저를 배웅해 줍니다.
참고로 이곳을 떠나면 아쉽게도 만년설로 반짝이는 신들의 봉우리들은 더 이상 볼수 없게 됩니다.(정확히는 아주 먼발치에서 보거나 일부만 볼수있죠.)
이끼류 혹은 난류인것 같은데 예쁘게도 하얀꽃을 피우고 있네요.
조금만 내려오니 기온이 급상승해서 덥고 메마른 우리네 봄날같은 기후가 됩니다.
연초록의 옷으로 갈아입은 나뭇잎이 햇빛에 반짝이네요.
누군가가 커다란 대바구니를 짊어지고(이마에 매고) 걸어갑니다.
현지인들 대부분은 바구니든 배낭이든 뭐든 어깨로 매지않고 이마로 맵니다.
작게 나있는 돌길에 바람에 떨어진 랄리구라스 꽃잎들이 그야말로 '꽃길'을 만들어주고 있네요.
배는 전혀 안고픈데도 Hungry Eye라는 글을 보는 순간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간단히 짜파티를 간식으로 먹습니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의 연속입니다.
나지막한 내리막길인데다 하산길이라서인지 발걸음이 무척 가볍게 느껴집니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이상하게 랄리구라스나무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이미 실컷 봐서인지 많이 아쉽지는 않지만 뭔가 계속 보던게 안보이니 허전하네요
이따금씩 만나는 작은 개울물에 세수를 하면 그 차가움에 깜짝깜짝 놀라지만 땀을 씻어낸 후의 청량감은 최고입니다.
한무리의 당나귀들이 짐을 싣고 터벅터벅 힘겹게 오르막을 오릅니다.
이때는 무조건 절벽쪽이 아닌 반대편 안쪽에 바싹 붙어야합니다.
동물들은 바보라서 제몸에 실린 짐을 가늠하지 못하기에 옆으로 튀어나온 짐꾸러미에 밀려 어디론가로 떨어질수도 있으니 조심!
일반적인 짐은 물론 닭도 싣고 가는, 그야말로 친환경 전천후 운송수단입니다.
저멀리 보이는 곳이 울레리입니다.
이곳에서부터... 무릎이 아작나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지옥의 돌계단 3,280개가 구불구불 이어지는데 오르막이야 낑낑거리며 오른다 치지만 내리막은 정말 스틱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무릎관절이 다 나갈 정도로 피곤한 길입니다.
오죽하면 지도에 3,280 Stone Steps이라고 표기해뒀을 정도이니...
실제 세어보진 못했지만 제 생각엔 미니멈 수치인것 같고 4,000개 이상으로 느껴집니다.
저처럼 배낭이 무겁다거나 평소 무릎이 좋지않은 분들은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스틱을 꼭 사용하세요.
오후 접어들면서 오늘 역시 당연하다는 듯 구름들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이정도 해발과 기온에서는 100% 비가 올건데 아...
비 내리는 길 걷는게 한두번은 괜찮지만 이젠 좀 무서워지려 합니다.
돌계단의 연속입니다.
게다가 당나귀들이 지나간 후엔 어김없이 갓 배출한 똥들이 여기저기에...
만일 수목한계선 위였더라면 이 똥이 훌륭한 땔감인 탓에 다 수거해 가기라도 하지만...
경사만 틀린 돌계단이 계속 쭈욱 컨니뉴 이어집니다.
오랜만에 보는 이쁘장한 랄리구라스도 저만치 앞의 급경사 돌계단길 생각에 묻혀버립니다.
꽃잎이 수놓아도... 돌계단은 돌계단...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봅니다.
사진 오른쪽의 급경사 돌계단길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도 무릎이 아파오는 것 같습니다.
끝난듯 보이나 여전히 이 돌계단길은 계속 이어집니다.
포카라라는 지명이 나오는 걸 보고선 새삼 이번 트레킹의 끝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합니다.
오늘은 피할 줄 알았는데 역시나...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거의 매일 오후에는 어김없이 눈, 비 혹은 우박을 맞는군요.
세차게 내리는 비를 피해 작은 롯지에다 배낭을 내려놓고는 따뜻한 밀크티를 주문합니다.
꼭 오늘 포카라에 가야하는 건 아닌데다 여행 중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라 소나기에 젖은 몸을 따뜻한 차로 녹이며 그냥 그 나름대로의 우중풍경을 즐깁니다.
한참을 그렇게 내리던 소나기는 두어시간만에 그쳤지만 여기서 머물기보단 그냥 나야풀까지 가자 싶어 헤드랜턴을 미리 꺼내두고 늦은 오후임에도 다시 길을 나섭니다.
만일 좀 더 그럴싸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면 하루를 머물렀겠지만...
아직 비구름이 물러가지 않은 듯 하늘은 잿빛에 쌓여있는데다 나야풀까지는 좀 먼 거리인것 같아 비레단티까지만 가기로 합니다.
가다보니 해는 져 버리고 헤드랜턴에 의지해 계속 걸어가고 있지만 불안한 마음도 들긴 합니다.
길을 잃으면 어쩌나,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며 걸음을 재촉해 한참을 내달렸더니 저멀리 불빛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고 이내 꽤 큰 마을에 도착하게 됩니다.
롯지이름에 비레단티가 들어가 있는 걸 보고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에 다리가 풀립니다.
안도감 보다는 그 울레리의 무지막지한 돌계단길과 해떨어진 뒤에 뛰다시피 잰걸음으로 왔더니 긴장이 한번에 풀려버려서인것 같습니다.
은은한 촛불아래에서 달밧을 리필해가며 깨끗하게 먹어치우곤 침낭속에 들어가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부분을 머릿속으로 정리합니다.
참 독특한 글씨죠...
묵었던 롯지의 주인아저씨가 나름 예쁘게 적는다고 적은거 같은데...인식률은...
선라이즈호텔이라고 하는데 정작 선라이즈는 잘 안보이는...
은은하게 타오르는 향나무의 연기가 바람에 실려 이른 아침의 온 마을에 그 향기를 전합니다.
비레단티의 체크포인트에서 TIMS카드에 도장을 찍으며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트레킹의 일정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습니다.
별로 길지 않은 시간동안 저에게 다가왔던 풍요의 여신과 하얀신, 그리고 세상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독특한 모양의 마차푸차레를 비롯한 수많은 신들의 봉우리들, 온 산을 붉게 물들였던 랄리구라스와 짖궂은 날씨까지도...
소중하면서도 아름다웠던 기억들은 제 마음속에서 작지만 강렬하게 빛나는 불꽃으로 남아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이 시간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히말라야의 신들과 대면하기 위해 작은 한발을 내딛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여행 속 짧은 여행을 그렇게 마무리합니다.
포카라에 도착해서는 푹 쉬려고 했지만 랑탕지역에서 이어진 인연을 포카라에서 또다시 재회하는 바람에 밤을 꼴딱 새고는 같이했던 네분이랑 사랑곳으로 일출을 보러가게 됩니다.
ABC트레킹 일정의 여독이 풀릴새도 없이 새벽까지 술을 마신데다, 잠한숨 안자고 사랑곳에 올랐더니 그야말로 몸이 만신창이 된 느낌이더군요.
게다가 일출을 본 후에 곧바로 오스트레일리안캠프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안나푸르나의 품에 안겨버리게 되었습니다.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긴 했지만 이 또한 여행 중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작은 일탈이니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겠죠!^^
[번외편]
1. 사랑곳
포카라 전경과 페와딸(호수)을 비롯해 저멀리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다울라기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멋진 장소이며 일출로도 유명.
2. 오스트레일리안캠프
1박2일, 혹은 하루 일정으로도 멋진뷰를 선물해주는 곳이며 안나푸르나 및 마차푸차레를 탁트인 곳에서 조망한다는 기쁨을 누릴수 있음.
사랑곳에서의 일출.
사랑곳 전망대.
다시찾은 안나푸르나자락의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직접 만든 '락시'를 마시며...
참고로 락시는 우리네 전통소주와 비슷합니다.
모닥불 아래에서 현지인들과의 즐거웠던 하룻밤.
티벳전통악기 연주를 통해서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싶었던 네팔청년.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마차푸차레.
사랑곳, 오스트레일리안캠프 방문을 끝으로 포카라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카트만두로 돌아가 네팔에서의 세번째 트레킹을 위해 새로운 퍼밋과 TIMS카드를 발급받습니다.
새로운 지역에서의 새로운 기억을 담기 위해, 그리고 또다른 히말라야의 신들과 대면하기 위해, 한껏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부푼 발걸음은 어느새 쿰부 히말라야를 향하여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끝-
다소 긴 글과 사진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로서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 푼힐전망대 트레킹 마지막편을 마칩니다.
오래전 기억과, 기록용 다이어리와, 지도를 참고로 지명을 적은 관계로 혹시나 틀린 부분 지적해 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맞춤법/띄어쓰기는 애교로 봐주세요^^
[다음 지역 프리뷰]
별이 쏟아지는 추꿍(ChhuKung)의 밤하늘
신들이 잠들어 있는 땅 사가르마타국립공원(Sagarmatha N.P)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Everest 8,848m)등정을 위한 전진기지 EBC(Everest Base Camp)
세개의 호수와 거대한 빙하, 초오유(Cho Oyu 8,201m)를 만날수 있는 고쿄리(Gokyo Ri 5,360m)
EBC로 향하던 당나귀와 야크 행렬이 사라져버린 옛길 지리바자르(Jiri Bazar)
아마다블람(Ama Dablam 6,812m), 마차푸차레(Machapuchare 6,993m)보다 아름답게 빛났던 캉테가(Kangtega 6,782m)
그리고...
빈대에게 수십군데 피 빨리고 만신창이가 된 내 몸뚱이...
 | |
|
등록안내
등록안내
0
0
그리미~
배추장사
연휴때문에 글이 좀 늦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