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건 알겠어. 그럼 당신한테 오는 돈은 뭔데?”
“몰라. 하지만 검은돈은 아니야. 이건 뭐랄까…… 색깔로 보면 청록색. 아니면 진보라 같은 돈이야. 이 돈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것인지 아무도 몰라.”
“모르는 돈을 어떻게 맡아.”
“모르기 때문에 맡을 수 있는 거야. 제대로 알아버리면 소음기를 단 권총이 내 머리를 터뜨려버릴 수도 있거든. 나는 어차피 이 돈에 대해 모르고, 그게 서로에게 안심을 주는 거지.”
“그거 인터넷 사기 아니야? 저는 아프리카 어느 왕국의 왕위 승계 순위 25위쯤 되는 왕자인데 화학 처리 된 백 달러짜리 블랙 노트를 복구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한데요…… 그런 메일 많잖아.”
“사기는 아닌 것 같아. 대비를 해놓기도 했지. 벌써 일부는 내 계좌로 들어왔다가 나갔어. 그리고 계속 움직여.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돌아와. 일부만 돌아오는 경우 가 태반이지만 말이야. 그 돈이 들어가는 곳의 명단을 뽑아보면 대체로 스타트업들이고. 걔들은 돈을 까먹어도 욕을 먹지 않거든. 탄소 섬유로 집을 지을 수 있고, 델라웨어에 앉아서 리스본을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들이잖아. 세그웨이가 스케이트보드보다 대단하다고 믿는 멍청이들. 그런데 나하고는 상관이 없어. 나는 이 법인을 설립하고 관리하는 척만 하고 있으면 돼. 돈은 알아서 들어오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고 줄어들어. 많이 줄어들면 누군가가 채워 넣고 나는 그게 누군지를 절대 알 수 없어.”
“괜찮겠어?”
“나는 하고 싶어. 해보고 싶어. 물론, 계속하려면 당신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알잖아. 나한테 필요한 건 돈이 아니야. 그냥 돈은 아무 의미가 없어. 나는 이렇게 이상한 돈이 좋아. 이상한 일들. 나한테 이렇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그들이 왜 하필 나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짐작조차 못 하겠어. 그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일 아냐? 일이 잘못되면, 글쎄, 감옥밖에 더 가겠어? 내가 무슨 론스타처럼 나랏돈을 빼먹는 것도 아닌데. 그래 봤자 배임이나 횡령이겠지. 외환관리법에 걸리려나? 그래봤자 1년도 안 살고 나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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