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유니폼' 용병들의 낭만야구 언제든 놀러오세요[여자 야구 현주소⑨]

[스포츠서울 | 고양=황혜정기자] “즐겁고 부담없는 용병 게임, 언제든지 놀러오세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달 25일 밤. 경기도 고양시 한 야구장에 불이 켜졌다.
그곳에 각기 다른 유니폼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파란색, 빨강색, 검정색, 꽃무늬 조끼까지 다양한 옷을 입고 나타난 이들은 야구를 하러 왔다.
우리는 이들을 ‘용병’이라 부른다.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엄마 용병’부터, 50대 자칭 ‘할매 용병’, 전 ‘야구 국가대표 용병’, 베스트셀러 ‘작가 용병’까지 다양한 사람이 모인다.
이들은 왜 소속팀이 아닌 이벤트 모임에 나와서 야구를 하는가. ‘용병 게임’이라 불리는 이 모임의 주최자 곽대이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 야구 국가대표 곽대이 씨가 운영하는 여자야구 용병밴드.

게임 주최자 곽 씨는 전 야구 국가대표 선수로, 현재 사회인 야구 심판 및 기록원으로 일하고 있다.
곽 씨는 “남자 사회인 리그에서는 자체적으로 용병을 운영하는데 우리 여자야구도 용병 게임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생각했다.
어느새 여자 사회인 야구 인구가 1000명 가까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이어 “(야구 국가대표 에이스 김)라경이가 ‘JDB’라는 용병 팀을 만들어 경기하는 것도 보고, 또 (현 국가대표 주장 이)빛나가 노량진 야구장에서 용병 게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복합적으로 동기부여가 됐다”며 미소지었다.

전 국가대표 선수이자 용병게임 주최자 곽대이 씨가 경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곽 씨가 운영하는 용병 게임은 올해 3월18일 첫 모임을 시작으로 월 1~2회 씩 열고 있다.
경기장을 잡고, 모임 공지를 올리고, 모임을 준비하는 일을 오롯이 혼자 하고 있다.
곽 씨는 “다행히 주변에서 많이 도와준다.
다만, 장소가 경기도이다 보니 승용차가 있어야 오기 수월한 지역이라 선수 수급이 조금 아쉽다”고 했다.
모임의 취지는 사회인 아마추어 선수들이 편하게 와서 자신이 뛰고 싶은 포지션을 테스트 하고, 야구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여성들이 야구를 부담없이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선수들이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이스트서울 소속 이 모씨는 10년 차 사회인 야구 선수다.
그는 “용병 게임이 열린다는 건 여자야구에서 황금 같은 기회”라며 모임을 주최한 곽 씨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정지윤(무소속)씨도 마찬가지. 정 씨는 “현재 나는 팀 운동을 쉬고 있다.
용병 게임은 리그전과 다르게 편안하고 재밌게 뛸 수 있다.
승리에 집착하지 않고 다들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팀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용병 게임에 매번 참석할 것 같다.
(곽)대이 언니에게 참 고맙다”며 활짝 웃었다.
야구 경력 5년차 드래곤볼 소속 이상미 씨는 “용병 게임은 부담감이 없다.
덕분에 올 때마다 자신감을 얻어간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각 소속팀에서 오지만, 분위기는 항상 좋다.
몇 번만 손발을 맞춰보면 문제 없다”고 했다.

뒤늦게 깜짝 손님이 도착했다.
곽 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그는 급하게 몸을 풀더니 구원 투수로 등판했다.
바로 ‘여자야구입문기’(2022)의 김입문 작가다.
최근 소속팀 이스트서울에서 선발승을 기록한 그지만, 이날은 몸이 덜 풀렸는지 적시타를 연달아 얻어맞고 한 이닝 동안 3실점 했다.
“저 얻어맞은 거 기사에 쓰실 거 아니죠?”라는 김 작가의 눈을 슬그머니 피하며 초등학교 4학년 A양에게 다가갔다.
A양의 어머니는 용병 게임에서 뛰고 있는 선수 B씨다.
A양에게 ‘엄마가 야구 하는 모습은 어때 보여?’라고 질문하자 A양은 환하게 웃으며 “멋있어요”라고 답했다.
A양은 종종 어머니 B씨와 함께 야구를 한다고 말했다.

따뜻한 국물과 함께 어묵을 준비한 곽대이 씨. 야구팀 제네시스 소속 동갑내기 조우정, 이명진 선수가 찬조했다.

비가 세차게 내렸다.
더 이상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무리라 판단되자 모두가 더그아웃 안으로 대피했다.
선수들은 곽 씨가 미리 준비한 따뜻한 오뎅 국물을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곽 씨는 핫팩을 비롯해 준비한 작은 선물을 한 명씩 나눠주며 “와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김입문 작가는 용병 게임에 온 선수들과 즐겁게 사진을 찍으며 안부를 나눴다.
곽 씨는 “여자야구를 알리고 쉽게 접근했으면 좋겠어서 시작했다.
고군분투하는 여자야구 2세대에게 1세대인 내가 조금이나마 여자야구인으로써 여자야구에 보탬이 될수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시작했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어느새 이 모임도 1년이 되어간다”며 미소지었다.
소속팀은 달라도,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비가 세차게 오는 밤, 추운 날씨에도 용병들의 낭만야구는 계속된다.

글·사진 |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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