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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전거 사고나 교통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3월 25일 금요일.
퇴근 후 친구들과 한잔 하고 집에 자정이 약간 안되어 귀가한 후 잠이 들었어요.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아닌 상태였는데
뱃속이 불편해서 화장실에 간 것 까지만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는 단편적인 기억들만 남겨져 있습니다.
놀라서 소리치던 와이프의 목소리...
나를 부르던 119 대원의 목소리...
네.
저는 한밤중에 대량의 피를 쏟아 화장실을 피바다로 만들고는
119에 실려서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고 합니다.
응급실에서 CT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받은 후 병실로 향했고
그 이후부터는 기억이 또렷합니다.
아.
병원 화장실에서 또다시 피를 쏟아 기절했던 적은 빼고요.
입원 후 담당 교수님을 만났는데
최초에는 대장 게실이라는 증상을 의심하더군요.
흔히 장내 출혈의 경우 대장 게실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면서요.
뭐 보통은 출혈 지점을 찾지 못하고 자연 치료되어 퇴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루이틀 지켜보자면서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어요.
하지만.
일요일 오후부터 또다시 출혈이 시작되었고
다음날 월요일 오전.
병원 화장실에서 대량으로 출혈을 하면서 기절을 하게 됩니다.
이때 긴급하게 혈관조영술을 하게 되었는데
출혈 부위를 찾지 못하고
제 바이탈 사인이 워낙 나빠서 응급 외과 수술을 하려고 했었다는군요.
하지만 출혈 지점이 대장인지 어디인지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수술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판단으로 담당 교수님께서 수술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대신... 중환자실 행.
중환자실을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멀쩡한 정신으로 4일 밤낮을 중환자실에서 보낸 기억은 정말이지...
하여튼 이곳에서도 한번의 출혈을 겪으면서 장청소를 하고는 위/대장 내시경을 했고,
위와 대장 모두 출혈 지점이 아니라는 데이터를 얻었어요.
그리고 대장 내시경을 하면서 소장의 30cm 지점까지 들어갔는데
그곳 역시 피로 가득한 것을 확인함으로서 출혈 지점은 소장 '어딘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런데...
사람의 소장은 길이가 7~8m에 이르는 굉장히 긴 장기입니다.
여기는 현대 의학으로는 내시경이 불가능하다는군요.
그래서 하게 된 것이 캡슐 내시경.
또다시 밤새 장을 비워내고...
아침 일찍 캡슐을 삼키고 12시간동안의 검사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때 또다시 시작된 출혈.
또다시 달려온 외과 의사분들은 자기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냥 열죠?
에이... 아깝잖아. 저거 잘해내면 위치 특정할지도 모르는데 괜히 열었다가 어딘지 확인 못하면 어쩔래?
뭐 이런 살벌한 말들을 잘도 환자 앞에 두고는 하더라구요;;;;
내가 거의 기절한 상태라서 그런가...
그래도 다 들리던데...
응급 수술이냐 아니냐를 두고 설전을 하다가
이때 2차 혈관조영술을 들어가게 됩니다.
이거...
검사 자체는 아프지 않은데 워낙 큰 혈관에 카테터를 집어넣는 것이라 그런지
지혈을 할때 너무 아프더군요.
시행하시는 분이야 저를 위해서 확실한 지혈을 하기 위해
체중을 실어 꽉 누르는 것이라는 것을 저도 알고는 있지만
너무 아파서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지경이었어요...
하여튼 2차 혈관조영술에서도 출혈 지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 회진.
교수님이 오셔서 하신 첫마디.
아... 정말 힘들다. 이렇게도 찾기 어렵고 계속 출혈이 나는 경우는 처음이다.
그러면서 뭔가 검사를 하려고 계획을 세우면 그보다 한발 앞서 터지는 출혈과
잡힐듯 잡힐듯 아슬아슬하게 도망다니는 것 같다는 표현...
그리고 아까 수술을 반대하던 외과 의사님도 오셔서는
이런 경우 진짜 보기 힘들다고.
자기가 다른 병원에서 몇년, 지금 이 병원에서도 3년이 넘었는데 이런 경우 처음 본다고...
1. 출혈이 자연적으로 멈춰서 퇴원을 하거나.
2. 출혈이 계속될 경우 내시경으로 잡히거나.
3. 출혈이 계속될 경우 혈관조영술로는 대부분 잡힌다.
그래서 해당 혈관을 지져버리면 해결된다.
이 케이스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는데...
운나쁘게도 제가 바로 저 3가지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케이스.
그렇다고 수술을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정확한 지점을 알 수 없으니 개복을 한다고 해도
일일이 소장을 끄집어내서 확인을 할수도 없다는 겁니다.
차라리 천공이 있으면 개복시 보이기라도 하지만
장내 출혈이니 개복해도 겉으로는 출혈 지점을 알 수 없다는거죠.
며칠 후 듣게된 캡슐 내시경 결과는 소장의 '하부 어딘가'로 타겟이 좁혀졌다는 정도.
하지만 그 오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즉, 아직도 모르겠다.
그 소식을 들은 것이 지난 월요일이었구요,
그날 부터는 출혈이 없어져서 3일에 걸쳐서 미음, 죽, 일반 식사를 거쳐서
소화 기능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어제 퇴원을 했습니다.
병원 창 밖으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면서
쟤들이 다 지고나서야 여길 벗어나게 될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는 빨리 퇴원을 했어요.
CT 촬영, 두번에 걸친 혈관조영술, 위/대장내시경
거기에 캡슐 내시경까지 하고나서 얻은 결론은
소장 하부 어딘가에서 출혈이 있었다는 것이었네요.
그 사이 검사를 하려고만 하면 쏟아지던 출혈...
네번에 걸친 대량 출혈과 10 팩 이상의 수혈.
병원 화장실에서도 피를 쏟으며 기절해서 긴급하게 수술할뻔 한 일.
몇번이나 중환자실을 들락날락 거리고...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경험 후 얻은 것은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네요.
정확한 출혈 지점을 특정할 수 없어서 수술도 불가.
그냥 이렇게 살다가 또 피가 터지면 119에 실려 병원에 가서
긴급 치료받고 며칠 입원했다가 괜찮아지면 퇴원하고...
이걸 반복하면서 살아야 한다네요.
문제는...
이게 또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죠.
오늘 터질지...
몇년 후에나 터질지 말이죠.
퇴원 전 마지막 회진때 교수님께 여쭤봤어요.
이게... 원인이 뭔가요?
원인? 그런거 없어.
환자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어떤것도 아냐.
그냥... 운이 없는거야 운이.
그럼 말이죠. 음식은 어떤 걸 조심해야 할까요?
음식? 아냐 그런거 없어.
음식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니까 아무거나 다 먹어도 돼.
어제 집에 돌아와 제 방에 걸려있는 자전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내가 저걸... 다시 탈 수 있을까...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군요.
자포에 이 긴 글을 적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저를 아는 분들은 거의 계시지 않겠지만
그래도 자전거를 타면서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커뮤니티이기에 조심스레 남겨 봅니다.
자포 여러분들.
정말 건강 조심하시구요....
자전거를 타고싶을 때 마음대로 탈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면서도
저와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 한없이 부러운 것이예요.
퇴원을 하니 날이 많이 따뜻해지고 자전거타기 너무나 좋은 날이 되었더군요.
즐겁고 안전한 라이딩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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