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 고향은 경남 산청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빨치산들의 활동무대였던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시골이죠.

6.25 때 있었던 일들 중 밝혀진 양민학살도 많지만, 밝혀지지 않은 양민학살 사건도 아직 있을 겁니다.

저희 할머니 한테 들었던 이야기만 해도

국국이 빨치산 잡는다고 와서 빨치산은 못잡고 

죄 마을 남자들 다 끌고 가서 총으로 싸그리 다 죽였다라는 이야기들이 많았으니까요.

시신들이 쌓여져 있는 가운데를 헤집고 들어간 동네 아낙들이

피 칠갑을 하고서는 자기 아들, 남편 시신을 찾아서 묻어주고 그랬다더군요.

그나마 시신이라도 찾으면 다행이구요.

그 와중에 정신 놓은 사람들도 많았구요.

마지막 빨치산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라고 합니다.

네. 마지막 빨치산은 여자입니다.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고, 북한은 가본적도 없이

지리산에서 태어나 살다가, 남편이 빨치산 부역자로 끌려갈 판에 도망가자

같이 산을 오른 사람.

그 때 유명했던 말이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조선인민공화국이었거든요.

밤이 되면 빨치산들이 내려와서 마을 식량을 털어가고

낮이 되면 국군이 들어와서 식량 털린 양민들을 부역자라고 학살하고

그런 반복된 일상 속에, 살아남기 위해 산을 오르게 된

그 전에는 그저 순박하기만 했던 시골 아낙이 마지막 빨치산입니다.

모두가 죽이려고만 하고, 국군도, 인민군도,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아서

산에 올랐던 사람이 마지막 빨치산이 되었죠.

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마 제가 국딩 때라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씁쓸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땅에 국가란 무엇인가 하고.

국민을 보호한다라는 그 기본적인 명제조차 지키지 못하는 인간들이

알량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국민을 죽이려 하고

국민은 살기 위해 저항하는, 그런 역사의 반복이 아니었나 하구요.

6.25부터, 광주를 거쳐, 세월호까지...

아직도 역사는 반복되는 느낌입니다.

이제와서는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여전히 국민을 지킨다는 기본 의무는 방조한 채

국민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권력만을 위한 무한 투쟁만이 아직도 정치꾼들의 생리가 되어버린 곳.

각종 재해, 사건 사고. 

이태원, 오송 지하차도 참사...

엊그제 오송 지하차도 부근을 우연히 차로 지나는데 그 앞에

재개통된다는 플래카드만 나부끼더군요.

이제, 거기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이.

아직도 살기 위해서, 혹은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서 무언가 하려 하면

여전히 좌빨,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들.

아직, 6.25와 빨치산은 현재진형형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