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썼는데 날렸네요....음....기억을 더듬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나푸르나 써킷은 베시사하르에서 시작해서 나야뽈까지의 여정을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좀솜에서 여정을 끝내며, 이 트렉을 편의상 안나푸르나 써킷 파트 1이라고도 합니다. 더 줄이면 그냥 안나푸르나 써킷이라고 합니다. 좀솜은 비행장이 있을 정도로 큰 도시이며, 쏘룽라를 넘어온 묵띠낫에서부터는 대부분 도로로 이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내리막이라서 그렇지 싶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라는 건, 제목에서의 파트 1은 트레킹 후기의 첫 번째 파트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2014년 7월 당시 저는 갓 졸업논문을 완성한 학생이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체력적으로 준비가 됐을리가 없었고, 산이래봤자 지리산 종주 몇 번 한게 다였을 정도로 산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여자친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뭔가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지운다는 느낌으로 안나푸르나 써킷을 가게 됐습니다. 곧바로 회사에 가게 되는 행운을 얻은 덕에 몬순기간에 가게 됐습니다만서도, 몬순기간엔 꽃들이 예쁘다는 말에 속아넘어가서 결국 비행기표를 끊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는 것이 경량과는 전혀 거리가 먼, 말도 안되는 배낭과 단백질파우더나 믹스너트(...왜그랬는지는 묻지 말아주세요) 등 무게나가는 것들 천지였습니다. 카메라는 니콘 F3(네, 필름의 그 F 맞습니다)와 롤라이35를 가져갔고, 당연히 필름도 20통이나 가져갔습니다. 말하자면, 산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비행기에 짐을 실었을 땐 물경 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무게를 자랑했었지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오늘 다른 게시물을 통해 공유드린 그 엑셀을 만들게 됐습니다. 랑땅을 갈 땐 짐의 무게를 하나하나 재 가며 만든 엑셀이었음에도, 결국엔 그걸 또 오버하게 되더군요. 짐을 반 가까이 줄였음에도, 고산증엔 장사 없더군요. 그래도 짐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습니다. 이 산행 후기로 인해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짐의 무게 관리는 딱히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멍청한 산행을 하실 리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실수를 공유하여 다른 분이 차마 해선 안되는 선택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본격 시작하기 전에, 아래는 대략적인 고도표입니다. 대충 머리 속에 어떤 느낌이겠구나-를 잡고 가시면 좋을듯 합니다.
Day 0 행정처리
타멜 동쪽에 위치한 tourist service center에서 TIMS카드를 발급받습니다. TIMS카드는 개인 트레커를 위한 그린카드와 가이드를 포함한 트레킹팀을 위한 블루카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개인 자격으로 산행을 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았'기에 시즌에 따라 매우 바글바글할 수 있습니다. 듣기로 지진 이후 트레킹 정책이 변한 관계로 가이드 없이는 산행이 불가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직접 가실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현지에서 알아보거나 최근 다녀오신 분들의 정보가 필요하지 싶네요. 증명사진이 있으면 빠르게 진행할 수 있고, 없으시더라도 센터에서 찍으실 수 있습니다. TIMS카드 발급비와 입산료 등을 지불하면(입산료는 현지에서 지불할 수도 있습니다. 가격은 같으니 환전을 못하셨더라도 딱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옆 사무실에 있던 아저씨한테 환전받은 적도 있습니다.) 필요한 행정적 절차는 끝나게 됩니다.
출발하기 전에는 지도를 사주세요. 이왕이면 자세한 지도를 사는 편이 이로울 듯 합니다.
Day 1 카트만두-베시사하르 버스라이딩
카트만두에서 베시사하르까지 이동합니다. 아침 일찍 카트만두 북부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갑니다. 베시사하르행 버스는 아침 일찍 출발하니 서두르시는게 좋습니다. 하지만 간발의 차로 놓쳤다 하더라도 낙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여지없이 늦었고, 포카라행 버스를 탔다가 중간 기착지 어딘가에서 베시사하르행 로컬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어떻게 가나, 네팔 버스가 빨리 갈 리는 없으니 피로도는 유사하지 싶습니다. 포카라와 카트만두를 잇는 버스가 아닌 한, 버스의 승차감은 크게 다르지 않을텝니다.
Day 2 베시사하르-게르무
정확히는 베시사하르에서 불불레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 게르무까지 트레킹하는 날입니다. 베시사하르에서 아침 일찍 나가보면 허름한 지붕 아래 휴게소가 있고, 그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버스정류장입니다. 아마도 못난이 개가 한 마리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염없이 기다리다보면 이윽고 출발하게 됩니다. 안나푸르나로 향하고 있다는 부푼 마음은 불불레행 버스 안에서 꺼지기 쉽습니다. 곳곳에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길을 낸다며 헤쳐진 산 때문인데, 환경파괴를 탓할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전기가 없으면 이 곳에 '살고'있는 분들은 전화도 티비도 맥주도 없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화도 티비도 뭣도 없이 자연인처럼 있는 그대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여행자들 눈에 보기 좋으라고 발전(development도, electricity generation도)하지 말라고 한다면 발전의 필요를 만들어낸 근본 원인이 할 말은 아닐테지요.
불불레에서 내리면 안나푸르나 지역 전체에 걸쳐 살고 있는 마낭기들의 마을 모습의 한 전형을 보시게 됩니다. 대나무로 만든 벤치가 멋드러진데, 버스에서 꼬박 흔들린 몸이 갑작스러운 걸음을 걷다 기대 쉬기에 좋습니다. 앞으로 많이 만나실겁니다. 첫 마을을 벗어나면 뭔가 'this is himalaya!'같은 풍경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평이한 길입니다. 산행이라고는 해도 아직 1000미터 고도에 도달하지도 않았고, 비포장도로의 옆을 걷는다는 사실에 김이 빠지는 분들도 있을법 합니다. 보통은 시양게/샹제에서 쉬게 되는데, 저희는 일정이 널널한 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체력도 바닥이고 짐도 무거워서 게르무에서 쉬게 됩니다. 이는 전형적인 론니플래닛 네팔편 일정인데, 느린 사람을 기준으로 일정을 짰다는 저자의 변이 꽤 말이 된다 싶습니다. 아담한 정원에 꽃이 가득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첫 밤을 보냈습니다. 계곡 건너편 멀리 폭포가 보이는 곳이었는데, 이름이 없다는 것 자체가 황당할 정도로 큰 폭포였습니다, 라고 당시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이름'을 짓는게 의미가 없는 규모라는걸 알게 됩니다.
네팔의_흔한_이름없는_폭포.jpg
샤워실엔 저희같은 실수를 한 인간이 많았던지 세계 각국의 샴푸들이 컬렉션처럼 놓여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무려 통샴푸를, 샤워실에서 그대로 가지고 나온 듯 한 큰 용기째로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배낭의 무게와 부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엘라스틴을 저희도 결국 그 곳에 놓고 왔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댁 아주머니의 머릿결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Day 3 게르무-딸
아침에 볶음밥을 먹고 길을 나서면 곧바로 샹제로 향하는 현수교를 건너게 됩니다. 그 길로 곧장 계곡을 따라 가파른 길을 오르게 됩니다. 숨이 넘어가겠다 싶은 생각이 들 즈음 나오는 짬체라는 마을이 나옵니다. 짬에 절은 트레커를 맞이하는 것은 안나푸르나 써킷에서의 첫 번째 검표소로, 도장을 찍는 동안 커다란 나무둥치 아래서 쉬다보면 금새 다른 트레커들을 만나게 됩니다. 근처의 펌프물로 머리를 감는다면 더 시원합니다. 검표를 받고 트렉으로 돌아서면 겹겹이 산을 안고 있는 테라스식 논을 만나게 됩니다. 저희를 포함한 많은 트레커들은 그 광경에 매료되어 시간가는줄 모르고 바라보게 됩니다.
그 풍경을 향해 걷다 보면 내리막입니다. 내리막이라 함은, 그만큼, 그리고 그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짬체에서 이미 많은 시간을 소모한 탓에 딸 전에 나오는 마을인 사탈레까지가 무던히 멀어보입니다. 사탈레까지 얼마나 걸리냐는 말을 수 십 번이나 되뇌이다 해가 점점 지는 지경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점입가경으로 병풍같은 절벽이 나타납니다. 그 절벽을 끊어버리겠다는 듯 강이 노기를 띈 소리를 내며 달리고, 그 힘에 저항하려는 앙상한 길이 나있는데, 그 길을 보셨다면 이미 여러분은 마을에 당도하기 까지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저희는 비록 그 순간 절망했지만, 여러분은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저 때 진심으로 비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딸이란 그들의 언어로 호수라는 뜻입니다. 예전에 호수였던 곳에 큰 산사태가 오는 바람에 산들에 둘러싸인 형국이 됐다고 합니다. 아마 이 절벽은 그 산사태 이후에 생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참을 올라가다보면 기적처럼, 마을이 높다란 산의 품 사이에 포근히 안겨있습니다. 벼락같았던 물줄기는 고요하게 마을을 휘감고, 어둑해진 하늘 아래 마을의 불빛이 새어나옵니다.
와이파이가 되냐는 물음 따윈 필요치 않습니다. 당장 제일 가까운 롯지에 들어가 그 날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해가 이미 진 상황, 트레커가 올리가 없다고 생각한 롯지의 부녀는 거지꼴로 나타난 저희를 보고 몹시 당황한 눈치였습니다. 나름 '위기'를 겪은 저희는 성공적인 하루의 마무리를 자축하는 의미에서 무려 맥주를 마셨습니다.
이 날 까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이 날 까지는.
Part 2에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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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독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