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역할하고 있는 것 맞죠?”
프로야구 내야수 김태진은 정규시즌 오른쪽 팔뚝에 피멍을 달고 살았다.
840g짜리 배트를 짧게 쥔 탓이다.
해당 배트는 손잡이 부분 10㎝ 위 지점에 표시가 새겨져 있다.
김태진이 그립을 쥐는 지점인데 스윙을 할 때면 배트 그립 부분이 팔뚝을 때렸다.
매일 피멍에 아이싱하는 게 경기 후 일과일 정도다.
선배 외야수 이용규처럼 콘택트에만 집중하겠다는, 장타 욕심을 버리고 생존하겠다는 일종의 의지반영이지만 영광의 상처는 매번 너무 컸다.
김태진의 짧게 쥔 배트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었다.
KIA서 트레이드로 키움 유니폼을 입은 후 타율 0.272(250타수 68안타)를 마크했다.
한창 타격감을 끌어올리던 시기에 부상을 당해 이탈했다.
부상만 없었다면 충분히 더 높은 지점으로 가닿을 수 있었다.
김태진은 “그때는 정말 모든 감각이 좋다고 자부하던 시기였어서 정말 아쉬웠다.
아쉽긴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이제 많이 털어냈다”고 했다.
올가을 김태진이 또 일을 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약세라던 키움이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KT를 누르고, 플레이오프(PO)에서 LG와 호각세를 이루는 일은 김태진의 역할도 크다.
기록을 살펴보자. 김태진은 KT와 준플레이오프에서 총 10차례 타석에 섰다.
투구수는 총 35구였다.
LG와 PO에서는 2차전까지 8타석을 소화했다.
상대 투수들이 던진 공은 총 40개였다.
타석당 투구수가 약 5개에 달한다는 의미다.
김태진은 “타석에 서면 승부에만 집중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든 배트에 맞추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용규놀이’가 떠오른다.
이용규는 타석에서 끈질기게 승부하는 타자다.
10개가 넘는 공을 던지게 한 뒤 기어코 출루하는 일도 다반사다.
상대 팀 투수뿐 아니라 감독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김태진은 그런 이용규를 롤모델 삼았고, 배트를 짧게 쥐었다.
자신의 역할을, 스타일을 이용규와 비슷하게 설정했다는 의미다.
김태진은 “요즘 주위에서 ‘제2의 용규놀이’라는 말을 해주는데 기분이 너무 좋다.
내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지 않나”라며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보겠다”고 웃었다.
사진=스포츠월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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