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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광복후 "조선 인민 공화국"의 좌절
이름:  간담브이


등록일: 2020-09-20 01:47
조회수: 179 / 추천수: 0




***  이 사료에선 1945년 10월 10일 미군정 장관 아놀드(Archibald V. Arnold)가 발표한 조선인민공화국 부인 성명 내용이다.

 

 

 

1945년 8월 17일 여운형(呂運亨, 1886~1947)을 위원장, 안재홍(安在鴻, 1891~1965)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건국 준비 위원회가 조직되었고, 같은 해 8월 26일 건국 선언과 강령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건국 준비 위원회는 이해관계와 이념적 차이에 따라서 점차 분열하여 안재홍을 중심으로 한 우익 세력이 탈퇴하였고, 그 뒤 좌익 세력이 건국 준비 위원회를 주도하였다.

 

 

1945년 9월 6일 건국 준비 위원회는 미군의 진주에 대처하기 위해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를 열어 조선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조선 인민 공화국의 정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경제적으로 완전한 자주적 독립 국가의 건설을 기함.

 

 

둘째, 일본 제국주의와 봉건 잔재 세력을 일소하고 전 민족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충실하기를 기함.

 

 

셋째, 노동자⋅농민 기타 일체 대중 생활의 급진적 향상을 기함.

 

 

넷째 세계 민주주의 제국의 일원으로서 상호 제휴하여 세계 평화의 확보를 기함.

 

 

 

그날 개최된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에서 중앙 의결 기관으로 중앙 인민 위원과 55명, 후보위원 20여 명, 고문 12명을 선출하였다. 이때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은 주석, 김구(金九, 1876~1949)는 내무부장,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은 외교부장 등으로 명단에 올랐는데, 전국 인민 위원 명단에는 당시 소련에 있던 김일성(金日成, 1912~1994)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해외에 있어 사전에 충분한 협의가 없었고, 동의도 얻지 못하였다. 또 인민 공화국은 박헌영(朴憲永, 1900~1955)의 조선 공산당 계열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우익 진영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였다. 게다가 미국의 경계심을 자극하여 1945년 0월 10일 아놀드(Archibald V. Arnold) 미군정 장관이 조선 인민 공화국을 격렬히 부인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그 뒤 조선 인민 공화국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지하는 민족주의 계열과 대립하였고, 10월 16일 귀국한 이승만은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를 발족하고 인민 공화국 중앙 인민 위원회 주석 취임을 거절하였다. 12월 12일 남한 주둔 미군사령관 존 하지(John R. Hodge) 장군이 조선 인민 공화국이 정부 행세를 하는 것은 비합법적인 일이므로 단속하겠다고 발표한 뒤에 세력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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