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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절친 독일인 저명한 여작가 루이제 린저의 글. 03편 마지막편 1
이름:  간담브이


등록일: 2020-09-17 00:20
조회수: 341 / 추천수: 0




종교: 한국전쟁 이전 북한의 카톨릭 교도들은 소수였으나 한때 베네딕트 교단이 활발히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추방당했는데 린저는 남한의 서양 신부 파비안 담 신부로부터 집단수용소 생활의 잔혹성에 대해 이미 들었다고 합니다.
   

린저는 북한 당국에 요청을 하여 평양에 있는 개신교도 2명과 면담합니다. 한명은 남한으로 도망을 오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때를 놓쳤다고 말하고 있지만 후회는 없다고 합니다. 3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데 이제 자식들은 의사, 고등학교 교사들이 되어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들은 북한에서는 교육에 돈이 안든다고 자랑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이들에 따르면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는 북한 아이들은 더 이상 종교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 아버지는 일제시대 혹독한 시기를 겪었기에 종교가 필요했지만 자신들은 자유롭고 행복해서 종교가 필요 없다고 했답니다.   

평양에는 1980년 당시 800명의 개신교도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도 없는데 그렇다고 서방의 지원에 대해 반겨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 것 같지 않아서 교회 건축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습니다.

 

  

북한인의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보면 "미국인들에 의해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교육된 기독교인들은 이 나라에서 제5별동대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이데올로기 기적 이유에서 그들에 의해 주입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때문에 ... 그들은 우리의 배반자였으며, 우리에게 자본주의 이념을 주입하려 했으며... 대지주라는 봉건계층에 가담하고 미국의 편에 서서 싸웠습니다."  

절에서 만난 스님... 정신적 면모는 없고 문화재 관리인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시골 면장과의 대화와 감옥의 존재: 시골 면장과의 대화에서 린저는 결혼제도에 대해 물어봅니다. 

결혼은 부모가 결정합니까? 대부분은 가족의 동의하에 결혼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가족들과 함께 삽니다. 결혼은 일찍하는 편입니다. 미혼모는 없습니까? 어떻게 그럴수가 두 사람이 동거하면 그것이 결혼한 것입니다.  

간통은 없나요? 있기는 한데 발생하면 그 사람은 잠시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 다른 곳에 보내집니다. 

 

살인범은? 살인자는 전쟁 중에나 있겠죠. 평화시에 다른 사람을 죽이겠습니까? 

사람들 사이에 적대감은? 싸우기야 하겠지만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강도나 도둑은? 5년간이나 면장을 지냈지만 그런 경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도둑은 어떻게 처벌받는가? 우선 설득한다. 그런 모습은 혁명을 후퇴시키고 있음을 환기시킵니다. 

재발하면? 노역소로 갑니다.

  

노역소는 감옥의 일종인가? 우리는 감옥이 없습니다.  법률상 제일 긴 형벌은 1년입니다.  

감옥이 없다고요? 김일성 수령은 억압은 억압을 낳고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고 가르쳤습니다. 갈등은 무기나 처벌로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60년대의 갈등상황에서 김일성 수령이 취했듯이 대화로써 푸는 것입니다.

  

린저의 방북기에서 의외로 집착하고 있는 주제가 감옥의 존재입니다. 당시 북한 당국은 감옥이 없다고 홍보했는데 앰네스티 등의 국제 인권단체에서는 북한의 정치범이 주로 갇혀 있는 집단수용소에 대해 서서히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린저는 나름 여러차례 감옥에 대해 알아보지만 결국 당국이 주선한 교화소(울타리도 제대로 없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를 방문하고 나서 북한 당국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즉, 북한에는 서구적 의미의 감옥이 없으며 가뜩이나 없는 죄수들도 김일성의 면담에서 그가 한 말 대로 끊임없는 교화와 설득을 통해 사회에 복귀시키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하지만 다음에 소개할 앰네스티가 1979년 북한의 양심수로 확인한 베네주엘라인 라메다 사건(특별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태업을 했다는 명목으로 20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고 가혹한 수형생활을 경험한 사건)을 보면 감옥이 없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으로 보입니다.

 

 

 

북한 사회에 대한 평가: 린저는 일반적 북한 사회에 대해 성역할의 존치와 수준 낮은 예술 등 일부 요소를 제외하면 극찬에 가까운 찬사를 보냅니다. 

 

 

"북한 인민들은 확실히 침착하고 쾌활하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도 없고 우울증에 걸려있는 사람도 없다고 하였다. 그것은 확실하다. 북한에서는 어떤 사람들이든 어떤 집단과 인민 공동체에 속해있다. 통신두절이라는 것은 없다. 여기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행하고 즐거이 함께 지낸다.


누구도 도움받지 못한 채 혼자 있도록 내팽겨쳐져 있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을 감안하면 어떤 이가 북한의 사회주의 모델에 대해 적대감을 갖는다 할지라도 이러한 것들이 서구 기독교 국가에서도 잘 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독때문에 짜살하는 노인들, 약물중독, 청소년 범죄 등은 서구에서 한탄만 하고 있지 근절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북한은 이 문제를 거의 해결하였다."

 

 

"타락한 서구에 어떻게 건전한 도덕의식을 일깨울 수 있을까? 북한은 나에게 자극이 되었다. 서구에서는 어떤 기독교적 가르침으로도 그리고 교회도 사람들에게 간통과 절도와 살인강도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는 북한에서 유교와 사회주의가 이룬 것(친절함, 자비심, 개인이기주의의 극복 등)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공산주의 국가에 테러도, 약물중독도, 은행강도도 없다는 사실이 우리의 보수주의자와 도덕주의자들에게는 매력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장점을 위해 몇가지 불편을 받아들이라고 그들을 설득할 수는 없을까? 조금 가난하지만 대신 억압당하는 일이 없지 않은가? 여행을 할 수 없지만 대신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짜살하는 일도 없지 않은가? 자본축적이 없지만 대신 빈민굴도 없지 않은가?"

 

 

위  글에서도 나타나지만 린저는 비록 북한 사람들이 여행의 자유가 없고, 수령에 대한 일인숭배가 강하지만 물신주의에 물들어 범죄와 마약으로 병들어 가는 서구 사회의 비극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불편은 감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정치/외교/통일 이슈

 

  

1956년 정변과 처리과정: 김선생(역사학자,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국장)과의 대담 "당시 공산주의자들 사이에는 친소 레닌주의적 경향과 친중국 마오주의적 경향의 두 정파가 있었습니다. 양정파는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한편 그들은 서로 적대적이면서도 한 가지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즉, 김일성이 제시한 사회주의형태를 바꿔버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김일성의 실각을 꾀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이 유럽을 방문한 틈을 타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그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불러 그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던 것입니다. 토론이 벌어지고 마오주의자들 리더는 중국으로 망명하였지만 소련파의 리더는 자신의 오류를 명확히 인식하게 됩니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당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령은 폭력을 거부하고 설득하려 했지, 결코 억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반대하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잡아가둘 감옥도 없고, 고문도 강제 자백도 없습니다. 대화가 있을 뿐입니다."

 

 

비록 김선생의 주장은 정치범도 없고 감옥도 없다는 이야기지만 한편 56년 정변이 제법 규모가 컸고 자칫 김일성이 외유중 쿠데타로 실각할 뻔 했던 큰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친중파와 친소파와의 갈등이 위험수위였으며 이는 스탈린 사후 후루시초프 정권과 사이가 벌어졌음을 보여 준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소련과의 관계: 북한 당국자에 따르면 북한은 전쟁 중에는 무기와 자금을 소련으로 부터 원조 받았으며 전후에는 무역상대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련은 북한에서 철 등의 원자재를 수입해갔고 금속공업제품을 수출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북한의 소련 의존도가 커져갔고 소련화될 위험(소비에트 방식 채택?)을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고자 하였답니다.


 그 와중에 60년대 중반 소련이 북한을 종속시키려 했고 이로인해 북한에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어 김일성의 위치가 위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은 유고의 선례에 따라 비동맹국가가 되기로 결정하였고, 김일성은 티토와 동맹을 맺었다고 합니다. 사실 린저의 1차 방북시점은 광주항쟁이 진행 중이던 시점이었고 김일성이 티토 장례식 참석을 마치고 막 귀국한 이후이기도 합니다.

  

북한은 소련과 떨어진 후 장차 다가올 통일에 대비하면서 남한에 대해 미국의 감독하에서 벗어날 것을 제의했다고 합니다. 남한은 이전의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식민지에 지나지 않지만 북한은 소련의 속국이 아니며, 어떤 동맹관계도 맺고 있지 않으며, 또 중국에 종속된 것도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비동맹외교: 린저는 박정희가 쓴 책들도 읽어봤다고 합니다. 그녀에 따르면 1960년대 박정희는 그의 저서에서 상황이 남한에 불리하게 되었다고 불평을 했는데 많은 3세계 국가들이 UN가입으로 인하여 UN에서의 세력관계가 뒤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정희는 할 수 없이 3세계 국가들과 더불어 북한에게도 호의를 보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남한에 우호적이었던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제 한국문제에 관심을 잃어 버렸거나 한국에 대한 UN의 결정에 반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2회 총회에서 대부분의 회원국가들이 한국문제를 UN에서 다루지 말고 앞으로 설치할 위원회에 이관하는데 찬성하였고 남한에서의 UN군 철수가 제안되었습니다. 또한 적당한 시기에 남북한을 동시에 UN 회원으로 초청하자는 의견이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북한의 비동맹외교 노선은 서구 식민지에서 갓 해방된 신생독립국들과의 연대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소리를 내보자는 생각은 정말 획기적 외교노선의 전환이었습니다. 김일성으로서는 한국전쟁에서 UN군의 참전을 아주 뼈아픈 패착으로 봤을 텐데 총회에서 한표를 행사하는 신생국과의 연대강화로 한반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골치가 아팠을 듯 합니다. 대미외교 말고는 변변한 외교노선이 없던 당시 남한 당국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을 듯 합니다. 결국 돈과 무기 또는 고유의 발전모델 등으로 신생국들의 환심을 사려는 남북한의 극한 외교경쟁이 아프리카 등지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개인독재: 린저는 북한 방문 후 그 정치체제에 대해 매우 우호적으로 변화합니다.  

 

"나는 북한을 어두운 독재국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밝은 독재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주석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또 모든 것을 감독하는, 그래서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며 모든 생활양식을 규정하는 가장이자 어버이로 여겨집니다. 서구민주주의 사람들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정권측이 만들어낸 사실상의 강제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국력은 소진되고 있고, 의회내에서 서로 무질서하게 욕이나 하고 비방이나 하는 형편입니다. 결국 현실적으로 인민의 복지증진에는 아무런 기여도 못하고 마는 것이지요."

  

즉, 린저가 보기에 서독을 포함한 서구국가는 교묘하게 기득권의 지배논리를 위장할 뿐 사실상 강제하고 있고 서로 싸우는 모습도 그 실익이 없다는 평가하고 그런 점에서 보면 북한의 독재는 오히려 밝은 독재라고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  린저의 방문기에서 북한 당국자가 주장하는 주체사상 이야기를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체사상은 혁명과 국가재건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외국의 영향이나 도움을 받지 않고 해결함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여타의 국가에서 이루어진 사회주의혁명의 경험과 맑스 레닌주의를 우리나라의 특수한 역사적/물질적 조건들을 고려하여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주체사상은 독창적 이데올로기이다. 타국에 대해 정치적으로 종속되지 않는다. 즉, 비동맹주의이다. 자주국방, 소련이나 중국 등과 군사적 동맹을 맺을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주체사상은 소비에트 방식(강제적 집단농장화, 중공업 올인, 대규모 굴락 조성을 통한 공포 등)과 일정 거리를 둔 북한의 전후 재건 및 자립형 경제개발의 자신감, 중소(특히 소련) 의존의 탈피와 비동맹외교가 중요한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사실 비동맹외교를 추진하면서 각국에 주체사상 연구소 설립을 지원하기도 하였습니다.

   

 

통일: 린저가 보기에 당시 남한 사람들은 그들의 민주주의 보다도 북한체제가 훨씬 더 좋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수십년간이나 대부분 일본을 통한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도 공산주의 선전이라 여기며 불신감에 쌓여 있었지만, 이제는 북한이 평화스럽게 살 뿐만 아니라 평화통일을 원함을, 게다가 공산주의의 기치를 내걸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나마 로빈슨 교수처럼 대놓고 북한으로 흡수통일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광주항쟁이 아직 진행 중이던 1980년 5월 20일 그녀가 김일성과 단독으로 만나면서 왜 광주항쟁에 개입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장면입니다.   


김일성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과거에 한 번 조국을 해방시키면서 나의 손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할 수 없습니다. 결코!" "광주학살에서 그렇게 용감한 젊은이들을 도우러 가지 않은 것은 나로선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위험속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느꼈지만 난 폭동을 야기하지도 않았고 개입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무력을 쓰거나 유혈사태 없이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나의 확고한 결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김일성이 광주항쟁에 결국 관여하지 않았고, 박정희 암살 전후의 혼란도 침공의 기회로 삼지 않음으로서 그의 진실함을 보여 주었다며 평화주의자로 그를 추켜 세워주고 있습니다. 사실 방북기에는 1976년 8.18 도끼만행 사건에 대해서도 남한 병사의 무력도발(도끼로 북한 병사를 먼저 공격한)로 사태가 시작되었다고 그 책임을 남한에 돌리고 있습니다. 

남북혐상에 대한 기술도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남한은 북한에 외국인 자유통행지구 설립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린저는 이에 대해 남한에서는 군부대가 있는 서울과 부산이 창녀도시가 되어 기생들이 들끓으며, 그에 상응하여 향락호텔과 나이트클럽이 즐비하여 외국의 유수한 기업가들이 몰려든다고 평판이 나 있다. 따라서 도덕관이 엄한 김일성은 부패의 온상이 될 수 있는 이런 제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며 김일성을 거들고 있습니다.  

이제 북한의 통일구상인 고려연방제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한때(지금도?)는 고려연방제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국보법 위반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한번쯤은 그내용을 알 필요도 있고 린저도 소개하고 있기에 간단히 요약해 봤습니다. 고려연방제는 1980년 10월 10일 노동당 6차 전당대회에서 고려연방제안이 결정되면서 알려졌습니다. 

통일의 첫단계는 남북한의 정치적 사회적 주요 기구의 대표자 회의를 소집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 단체들이 공동전선을 이루어 결집하며, 

세번째는 남북 양측에서 인구수와는 상관없이 동수의 투표권을 갖는 민족의회를 구성 남북한 정부형태는 유지하지만 상위기관인 민족의회의 통제를 받는다. 양국군대의 명령권은 민족의회에 넘겨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핵심 10개 원칙을 살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은 완전한 독립국이다. 

2. 이 공화국은 자유와 민주를 소중히 여기며 모든 종류의 독재를 배격한다. 그리고 인간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한다. 정당과 사회단체의 결성과 자유로운 활동의 보장, 종교와 언론의 자유, ... 

3. 이 공화국은 자립경제를 이룰 것이다.  

4. 경제, 문화, 스포츠, 교육부문에서 통일된 계획에 따라 협력 

5. 파괴된 모든 통신 및 교통수단 복구 

6. 이 공화국은 모든 인민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특히 중소기업을 육성할 것이다.  

7. 국토방위를 위해 단일군대로 민족연합군을 만들 것이다. 남북한의 군인수는 동일해야 한다. 10만내지 15만... 민족 연합군의 비용은 양측 부담 

8. 외국거주 한국인을 보호하며, 자유로운 귀국과 처벌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자유로운 직업활동을 보장한다. 

9.이해관계가 배치되는 사회체제라 하더라도 현재의 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다. 남한에 투자된 외국자본은 몰수되지 않을 것이며, 기업활동은 계속 허가될 것이다.  

10. 이 공화국은 외국에 단일대표를 파견할 것이며, UN에도 공동대표를 보낼 것이다. 대외정책은 평화적 입장을 취할 것이다. 한국은 비핵지대가 될 것이며 핵무기의 생산 및 수입은 금지될 것이다.    

 

즉, 민족의회가 최고 권력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1980년 상황에서 김일성은 북한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진다면 남한 민중으로부터 의미있는 지지를 받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지난 글에서 썼듯이 1974년부터 대외부채의 결제불이행이 나타나면서 자립경제 모델의 허약한 기초체력이 한계에 달했지만 자신이 구축한 사회시스템에 대한 우월감은 매우 높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현재 남한인들이 보편적으로(주사파를 제외한 보수/진보 모두) 느끼는 체제 우월감을 당시에는 북한 사람들이 향유하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린저의 북한에 대한 종합평가 

 

 

마지막으로 방문기 중간 중간에 그녀가 쓴 북한에 대한 총평을 가져와 봅니다.  

 

"북한의 사회주의는 인간적 면모를 띤 사회주의이다. 이러한 사회주의는 두브체크가 체코슬라바키아에서 시도했었으나 소련에 의해 좌절되었다. 하지만 김일성은 그것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 그의 사상과 그의 실천, 그것은 대안이며 제3의 길이다. 서구는 그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야만 할 것이다."

 

(1989년말과 1990년초 사회주의 불럭의 몰락국면에서 한겨레 독일통신원으로 이 사태에 대해 사실은 인간적 사회주의의 회귀라며 사실을 호도하던 모 인사가 떠오릅니다. 귀국 후 국민의 정부시절 이데올로그로 활동을 하며 한때 잘나갔지만 더 이상 인간적 사회주의 이야기를 떠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김일성은 원자력발전소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작금의 상황과 대비되는 이야기 입니다.)

"1953년 이래로 모든 물가는 똑같고 인플레문제는 없다. 서구생태학자들의 때늦은 요구를 많이 실현에 옮겼다. 즉 도시들은 녹지대로 채워지고 화학공장들은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 차량통행은 최소한도로 제한되며, 자가용 차가 없다.


 언덕과 산은 숲이 우거져있다. 수년전부터 벌목이 금지되어 있다." (인플레가 없는 세상이라...벌목이 금지된 생태주의 나라라... 지금 북한 상황과 대조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최근 일부 생태주의자들이 쿠바에 대해 보내는 연대감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북한사람들에게는 집세, 세금, 사회보장비, 교육비, 의료비 등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특별한 요구도 갖고 있지 않다. 소비를 자극하는 광고도 없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갖지 않는 것이다." (세금이 없는 것이 꼭 최선일까 하면 원유판매로 모든 재정을 감당하는 중동의 국가들에서 정치적 반대자의 국적을 박탈함으로써 이들을 탄압하는 것을 보면 회의적입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설사 나중에 사회보장 등으로 돌려받을지라도 조세를 부담하는 것은 누군가가 제공하는 시혜로 살고 있는게 아님을 명확히 해주는 것 같습니다.)

 

 

"세금을 걷지 않고 모든 시민에게 사회보장을 제공할 수 있는 배경에는 철, 석탄, 비스무트 같은 지하자원을 갖고 있으며 중공업과 경공업이 균형있게 발전하였다고 한다. 외국에 상품도 수출하고 수입에는 조금만 돈을 쓰며, 외화는 결코 허비하지 않는다고 한다. 외화를 낭비하며 여행하지도 않고, ... , 한 개인에게 자본이 집중되지도 않는다. 섬유제품을 자체 생산하며 합성수지도 만들고, 반면 사치품 생산에는 자본을 절대 투자하지 않으며, 일본과 미국에 부채를 많이 진 남한과는 달리 외국에 부채도 없다고 한다." (이전 글에서 북한의 대외부채 문제와 채무불이행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 채무불이행이 1974년이므로 린저의 방북시점 이전이지만 린저가 만난 당국자들은 거짓을 말했거나 아예 관련 사실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외부에 자국 경제통계를 공개하지 않는 국가가 내부적으로는 정확한 통계를 가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극히 회의적입니다.)

 

 

"북한이 제3세계국가이고 1945년에 완전히 황폐된 국가였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북한이 이룩한 수준은 놀라운 것이다. 북한에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은 없고, 또 의료 혜택이나 직장을 갖지 못한 사람 없이 모두 잘 산다는 것을 간단히 말해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소유하고 어느 누구도 노후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결코 후진국이 아니다.


한 나라에 과잉이란 것이 필요할까?" (린저는 서구사회의 과잉이 과연 필수적인가 하는 회의를 가지며 필요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꿈꾸며 그 단면을 북한에서 찾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필요에 의한 노동과 소비는 사실 생산력이 아주 높지 않다면 수렵채집 시대와 같은 상시적 결핍과 폭력의 일상화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명백히 자율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상부의 지시없이도 운용이 잘되는 비교적 큰 공장은 여분의 노동자를 보내거나 잉여이윤에서 다른 공장의  지원을 위해 자금을 전용하면서 보다 작은 공장들을 도와준다. 그와 같은 것은 자율성이 허용된다는 지표이다."

 

 

"물론 나는 여기 사람들이 낙원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만큼 순진하지는 않다. ...여기 사람들은 마음대로 외국을 여행하지도 못하며 명령에 의해서만 밖으로 나갈 수가 있다. 일자리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가 없으며 일자리를 정부에 의해서 배당 받는다. 개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골라서 공부할 수 없다. 필요에 따라 개인이 공부할 것이 정해진다. 무위도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항상 함께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 사람들은 또한 자기가 쓰고자 하는 것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검열은 없으나 작가들은 혁명정신에 입각하여 자기가 쓸 글의 주제와 문체를 강요받게 되며 글에 주석의 뜻을 반영할 것을 강요받게 된다. 거기에서는 공동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우선한다." (여행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받지만 수령이 결정한 공동의 이해가 우선이 된다면 이 또한 감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3세계의 어떤 나라도 북한처럼 그렇게 긍정적인 면들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는 없다. 즉, 실업이 없고, 무주택자가 없고, 마피아가 없고, 부패도 없고, 어떠한 빈곤도 없고, 약물중독도 없고, 윤리적 인간적 가치의 파괴도 없다." (린저와 같은 서구 지식인의 범죄, 약물, 슬럼이 없는 사회에 대한 동경이 엿보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250페이지의 시점별로 나열된 기행문 형식의 글을 제가 임의로 몇 개의 주제로 재요약을 하다  

하다보니 원문의 내용이 온전히 전달되었는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1980년대 후반 서독 국적의 한국인 남북한 연구자(남한 당국이 친북인사로 분류하였던)가 안기부의 감시를 받는 조건(?)으로 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연구자의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분이 이야기한 것 중 2가지가 아직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서독에서 받아보는 북한 노동신문의 값이 수십년동안 한번도 인상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도 없이 북한에서 일일이 항공편으로 서독에 배달해야 하는데 구독료를 올리지 않는 것은 받아보는 처지에서는 좋았지만 정말 괜찮은 것인지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린저의 방문기에 언급된 53년 이후 인플레가 없다는 이야기가 결코 허튼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제한적이지만 국제교류로 인한 가격인상은 모두 사회적 부담으로 버텼다는 것인데 과연 그 비용 부담에 대한 적절성은 누가 어떤식으로 관리를 했는지 구성원들은 알았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두번째로 그는 당시 남한과 북한을 각각 지옥과 감옥에 비유했는데, 그 비유는 한동안 설득력이 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만 더 첨언을 하면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남한 정치경제는 북한 영향력을 배제하고 논하기는 매우 어렵지 않았을까 합니다. 전쟁이라는 극한 형식으로 통일 시도를 벌이기도 했지만 남북한 민중에게는 체제선택의 이슈가 늘 상존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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